주 4.5일제 시범사업이 국정과제로 발표된 이후 연일 보수 언론의 비판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나하나 살펴보면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과장이 적지 않다. 주요 정책은 포괄임금 금지, 연차휴가 확대 및 활성화, 연결되지 않을 권리, 주 4.5일제 시범사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노동시간대 진입을 위한 고민의 시작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한 정책이다. 일상을 점령한 연장근로와 야근 등으로 빼앗긴 삶을 되찾는 길이다. 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바쁨, 쫓김, 지침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시간의 정치다.
주 4.5일제 시범사업은 300인 미만 중소·영세기업을 대상으로 4년 동안 추진된다. 전면·부분 도입 그리고 요일·시간 선택 등 기업 특성이 고려된다. 물론 주 5일제 도입 때와 유사하게 참여 기업에는 인건비와 세액 공제 등 혜택을 준다. 특히 산업재해 감축을 위해 생명안전 분야와 교대제 사업장에는 우선 지원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이를 위해 ‘노동시간 단축 지원법’(가칭)이 마련된다. 지난 9월24일 노사정은 물론 전문가가 참여하는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도 출범했다.
그렇다면 국민 여론은 어떨까. 찬반 의견은 팽팽하다.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두 차례 여론조사는 흥미롭다. 2021년 51%였던 주 4일제 찬성 의견이 2025년 46%로 여전히 절반 안팎이었고, 주 4.5일제 찬성 의견은 61%였다.
그러나 최근 한 기관은 주 4.5일제 찬성 의견은 32%(반대 68%)로, 반대 의견이 훨씬 많다는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자영업자와 60·70대 이상 고령층이 3분의 1가량 차지하는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사 문항 자체에 문제점이 있다. 해외나 국내 조사 대다수는 5점 혹은 4점 척도 문항을 활용한다. 그런데 해당 조사 문항은 2점 척도(반대·찬성)로 구성해 의구심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해외에서도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스페인 국민의 68.1%가 찬성했고, 폴란드는 47%가 찬성(40% 반대)했다. 그 밖에 영국(67%), 스위스(64%)에서도 찬성 의견이 다소 많다. 이를 반영하듯 유럽연합(EU) 국가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활발하다. 스페인은 중소기업 대상 24개월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최소 10%의 노동시간 단축을 목표로 한다. 참여 기업에는 임금 보조 비용 등 장려금이 지원된다. 폴란드는 내년부터 20% 노동시간 단축을 목표로 주 4일제(35시간) 시범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직원 창의성 향상과 업무 오류 감소 등 노동시장 경쟁력 강화 요인을 찾는 것이 수반된다.
노동시간 단축은 실제로 효과가 있을까. 과거 두 차례 노동시간 단축 과정에서 생산성과 일자리가 모두 증가했다. 1989~1991년 주 48시간에서 44시간으로 단축하면서 노동생산성이 상승(3.6%)하는 동시에 일자리도 증가(4.7%)했다. 2004~2011년 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단축하면서 10인 이상 제조업의 1인당 실질 부가가치 향상(1.5%)과 일자리 증가(5.2%)가 이뤄졌다. 법정 노동시간 단축은 국가의 다양한 제도적 지원을 통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주 4일제나 4.5일제 시범사업도 생산성과 잠재적 비용 상쇄 등 긍정적 측면을 찾을 필요가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20년 전 주 5일제 논의를 되짚어보면 변한 것이 없다. 당시 경제위기, 기업 도산부터 월요병과 이혼율 증가에 지역 소멸론까지 그럴듯한 반대 논리들이 언론을 타고 확산했다. 하지만 우려는 기우였고,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삶을 이루는 세 조각, 일·수면·여가의 표준적 시간을 재조정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사회와 노동을 위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면 더 중요한 목표에서 해법을 찾을 시점이다. 100년 전에 설계된 고정된 시간의 틀, 이제는 바꿀 때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