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노동의 기쁨 혹은 소외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노동의 기쁨 혹은 소외

입력 2025.10.09 21:00

수정 2025.10.09 21:02

펼치기/접기

추석 연휴에 땅콩을 수확했다. 땅콩 줄기를 캐어 꼬투리를 딴 후 깨끗이 씻어 널어 말렸다. 이 단순한 동작을 10시간 이상 반복하고 무거운 걸 들었다 놨다 하며 끊임없이 몸을 움직이고 나니, 녹초가 되었다.

그래도 즐거운 노동이었다. 가끔 하는 일이라 그런가 하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지 싶다. 노동이란 게 기쁜 일이 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해본다면 말이다.

‘노동’이란 “몸을 움직여 일함”으로 정의된다. 몸을 움직이는 모든 일이 힘든 건 아니다. 어떻게 우리의 몸을 움직여 일하는지, 노동의 조건이 중요하다. 휴식할 시간과 공간이 없고, 영양 있는 식사를 할 수 없고, 노동의 결실에서 소외된다면, 그 일은 극한의 고통이 된다. 반대로 일이 고된 만큼 충분히 휴식하고, 체력을 보충시키는 좋은 음식을 먹고, 내가 심고 수확한 작물을 보며 기쁨을 만끽할 때, 노동은 즐거운 일이 된다.

모든 노동이 그러할 것이다. 노동이란 자신을 ‘쓰고’ 소진하는 무엇이 아니라,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내며 나를 채우는 결실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라면, 노동은 삶의 본질이자 이유가 된다. 1944년 국제노동기구의 목표를 천명한 그 유명한 필라델피아 선언은 이렇게 시작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사람은 ‘쓰는’ 무엇이 아니라는 묵직한 선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노동자를 ‘사용’한다고 말한다. 법은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람을 ‘사용자’라고 부른다. 수업에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사용자’라는 말을 쓰지만, 언제나 머뭇거린다. ‘사용’의 사전적 정의에는 “사람을 다루어 이용함”이 들어 있다. 애초에 ‘고용’이란 단어가 쓸 용(用)자를 포함하고, 사전적으로 “삯을 주고 사람을 부림”이라고 풀이된다. ‘사람을 쓴다’는 말은 일상어이기도 하다.

말은 그저 기호가 아니라 세계관을 담는다. ‘사용자’라는 언어 기호가 가진 몰인간성이, 노동에 대한 관점을 반영하고 또 만든다고 생각한다. 인구를 인력으로 보고 노동자를 노동력으로 취급하며, 사람을 쓰고 쓰임을 당하는 도구로 바라보게 한다.

마치 사용자는 ‘사람을 다루어 이용’할 권리가 있는 듯 인식되고, 노동자는 ‘시키는 일을 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인간이 자유의지로 몸을 스스로 움직여 일하는 의미가 아니라, 타인에 의해 몸이 지배당하는 상태로 노동의 의미가 변질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용허가제’를 곱씹게 된다. 고용허가제는 내국인을 고용하지 못하는 중소제조업, 건설업, 농축수산업 등 사업장에서의 외국인 고용을 허용하는 제도다. 고용허가제는 외국의 노동자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일단 국내에 온 이주노동자를 다른 직장으로 이동할 수 없게 묶어두어 강제노동을 용인한다. 이주노동자는 채용 절차상 어떤 직장에서 일하게 되는지 모른 채 고용주에 의해 선발되어 입국하는데도, ‘사용자’가 허락하거나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의 자유의사로 다른 직장으로 갈 수가 없다.

농축수산업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더 열악하다. 근로기준법이 보장하는 근로시간, 휴게, 휴일에서 농축수산업이 적용 제외되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만 해당하는 규정은 아니지만, 내국인이 떠난 자리를 메꾸고 있는 이주노동자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농업 분야 이주노동자의 휴일은 대부분 월 2~4일이다. 휴일이 없다는 응답도 많다. 주 4일 근무를 논하는 시대에 이런 비인간적인 노동조건이 어떻게 사회적 파장 없이 용인되고 있는지 믿기 힘든 정도다. 게다가 주거환경이 열악해, 숙소에서 지친 몸을 회복하기는커녕 생명에 위협을 받기도 한다.

고용허가제는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생활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외국인이 취업하면 최소한 배우자와 자녀가 함께 생활하도록 동반비자가 허용된다. 그런데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에겐 이를 불허한다. 왜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일하면서도 저숙련 노동이라는 이유로 가족과 분리되어 생활해야 하는지 합리적인 설명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추석에 가족과 함께하는 동료들을 보며 이주노동자는 어떤 마음이 들까.

한 해의 수확을 축하하고 나누는 추석에, 정작 작물을 재배하는 일을 한 노동자가 그 노동의 결실에서 소외되지 않았나 돌아보게 된다. 명절 식탁에 올라갈 작물을 생산한 이주노동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품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물론 이주노동자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연휴 동안 쉴 수 없었던 수많은 노동자가 있다. 누군가에겐 길지만 누군가에게는 짧거나 없었을 휴일에 대해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더 나은 내년 명절을 기약하면 좋겠다.

김지혜 국립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

김지혜 국립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