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가 끝나니 가을이 성큼 다가왔다. 연휴 기간 가벼운 긴소매, 겉옷들을 꺼내며 올가을에는 이 ‘가을것’을 제대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몇년간 이 시기가 눈 깜짝할 새 지나가는 통에 가을다운 가을을 만끽하지 못했다.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천고마비’이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뜻인데, 말띠 지인들은 “그래서인지 가을만 되면 살이 찐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어디 말뿐일까. ‘가을에는 손톱 발톱이 다 먹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가을에는 손톱이나 발톱까지도 먹을 것을 찾을 만큼 매우 입맛이 당겨 많이 먹게 된다는 뜻이다.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 식욕까지 떨어진 이들에게 시원한 바람과 함께 풍성한 먹을거리가 눈앞에 펼쳐지니 가을에 살이 찌는 건 자연현상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가을’에는 계절 말고 ‘벼나 보리 따위의 농작물을 거두어들이는 일’이란 뜻도 있다. 그러니까 가을에 가을해야 결실과 풍요의 계절을 맞는 것이다. 그러려면 부지런히 움직여 수확해야 한다. ‘가을에는 부지깽이도 덤벙인다’고 하는데 아궁이에 쓰이는 막대기가 거들겠다고 나설 정도이니 얼마나 바쁜 시기였을까.
가을엔 비가 적게 오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하늘이 높고 푸르게 보인다. 가을에 내리는 비는 양이 적어서 ‘빗자루로도 피한다’고 한다. 또 ‘가을비는 턱 밑에서도 긋는다’라는 말도 있다. 가을비는 아주 잠깐 오다가 곧 그침, 그때그때의 잔걱정은 순간적이어서 곧 지나가버림을 비유하는 속담이다. 한데 요 며칠 가을비라 하기엔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가뭄에 고마운 단비였지만, 평년과 다른 비 소식에 내내 찌푸린 하늘을 보며 이 또한 기후변화 때문인가 걱정도 됐다.
확연히 낮아진 기온 덕분에 일상생활을 하기가 한결 편해졌다. 독서의 계절이라고도 하니 마음의 양식을 쌓아볼까, 선선한 ‘갈바람’을 맞으며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풍경을 보러 가는 것도 좋겠고… 하고 싶은 일 많은 가을이다. 이왕 천고마비의 계절이니 아욱, 낙지, 전어, 새우, 고등어 등 제철 별미도 까먹지 말고 즐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