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지나고 보니 올해가 3개월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런데 몇개월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우리의 생존이 달린 중대한 목표가 결정된다. 정부가 설정하는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 NDC)에 관한 이야기이다. 파리협정에 따라 세계 각국은 5년마다 이 목표를 정해왔다. 5년 전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기후위기 현실에 대한 우리들의 경험과 감각일 것이다.
정부는 오는 11월에 2035년까지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지 그 감축목표를 확정해 국제사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18년 대비 48%(산업계 제시안), 53%(매년 일정하게 감축하는 안), 61%(전 세계 평균 감축률안), 65%(선진국으로서 한국의 역할과 책임, 세대 간 형평성을 고려한 안)를 감축하는 4가지 논의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시민 의견 수렴을 위해 지난 9월 말부터 6차례의 대국민 공개 토론회를 진행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토론회가 이어졌지만, 단 한 번도 내 궁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정부가 제시한 논의안은 기후위기 대응에 충분한 목표인가? 만약 충분하지 않다면, 피해는 어느 정도인가? 그 피해를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인가? 감당하기 어렵다면 목표를 최소한 어느 수준으로 설정해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산업 부문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더욱 커졌다. 다배출 업종을 대표해 참석한 협회 관계자들은 “어렵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산업계는 48%안조차 “도전적”이라며 과도한 감축 의욕은 기업 생산성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달성 가능한 수준의 현실적인 목표를 택하자”는 그들의 주장을 들으며 이런 의문이 들었다. 산업계는, 기업은 기후재난에서 자유로운가?
그럴 리가. 3년 전 포스코 포항제철소는 태풍 힌남노의 타격으로 1979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가동이 중단된 바 있다. 재가동 때까지 뉴스 화면은 “초유의 사태”라는 문구로 뒤덮였다. 당시 포스코는 기후재난으로 인한 손실을 1조3400억원으로 추산했다.
기후재난의 경험은 기업에도, 사람들에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론은 여전히 현실성, 합리성이라는 판단 기준이 지배하고 있다. 이는 토론 패널이 산업계와 전문가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편향된 패널 구성은 기후재난으로부터 가장 보호받아야 할 존재들을 가리고, 논의의 지평을 축소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합리적’이며 ‘달성 가능한’ 수준이라고 설정했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지켜본 적이 있는가. 한국은 한 번도 ‘자발적인 노력’으로 감축목표를 달성해본 적이 없다. 경기 침체나 인구 감소로 인해 배출량이 자연스럽게 줄어든 것은 감축 노력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사이 오히려 지구 평균온도 상승의 속도는 빨라졌고, 기후재난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졌다. 그러니 이제 달리 판단해야 한다.
파리협정을 통해 전 세계는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자고 약속했다. 지난해 8월 헌법재판소는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비율을 규정한 탄소중립기본법이 헌법에 어긋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는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허용되는 전 지구적 배출량 한도 안에서, 선진국인 한국의 역량과 책임에 따라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감축 노력을 다하여 미래에 과도한 부담을 전가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한다. 여기에 부합하려면 2035년까지 적어도 65%를 감축해야 한다.
여전히 내 궁금증은 남아 있지만, 지구 온도가 계속 올라가는 현실에서 자신 있게 기후재난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고, 그 피해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도 없다. 4가지 감축안 중 65%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65% 감축목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응이기 때문이다.
박진미 플랜 1.5 정책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