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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재 영장 기각, 또다시 ‘법기술’ 용인해준 법원

입력 2025.10.20 14:50

수정 2025.10.20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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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1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 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1990년 12월 3일 신문사에 입사했다. 이후 해마다 12월 3일은 입사 기념일이었다. 2024년, 그날의 의미가 바뀌었다. 12월 3일 밤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회사로 달려갔다. 몸이 반응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여든 시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옳지 않다’는 감각, 주권자의 상식이 작동했을 터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박성재의 감각과 상식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박성재는 계엄 선포 2시간 전인 밤 8시 14분쯤 용산 대통령실에 도착했다. 이후 윤석열과 국방부 장관 김용현 등으로부터 계엄 관련 설명을 들었다. 이 자리엔 행정안전부 장관 이상민도 있었다. 대통령실 폐쇄회로(CC)TV에는 박성재가 계엄 관련 서류로 추정되는 문건을 받아보는 모습이 담겼다. 사전 회동 참석자 중 박성재를 제외한 3인은 모두 구속됐다.

국무회의가 끝난 후 박성재는 법무부로 가서 실·국장 회의를 열었다. 조은석 특별검사팀의 구속영장 청구서(내란중요임무종사 등)에 따르면 박성재는 세 가지를 지시한 것으로 나온다. 합동수사본부에 검사 파견, 출국금지팀 대기, 구치소 수용 공간 확보다.

특검팀은 합수부의 경우 반국가세력·부정선거 등을 수사할 예정이었고, 출국금지팀 대기와 구치소 수용 공간 확보는 체포될 정치인의 수감을 위한 것이었다고 본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류혁 감찰관은 계엄 관련 회의임을 확인하고 즉시 사표를 냈다.

박성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뜻밖의 방어 전략을 동원했다. “그땐 내란인 줄 몰랐다. 통상적 업무를 했을 뿐이다.” 계엄 선포 담화문도, 포고령 내용도, 군과 경찰이 국회를 봉쇄하는 상황도 제대로 몰랐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고 한다. 온 나라, 아니 전 세계가 TV 생중계로 지켜봤는데도 본인만 몰랐다는 거다.

이 황당한 궤변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믿어준 곳이 있다. 법원이다. 지난 15일 박정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박성재에 대한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피의자가 위법성을 인식하게 된 경위나 인식한 위법성의 구체적 내용, 피의자가 객관적으로 취한 조치의 위법성 존부와 정도에 대해 다툴 여지가 있다”고 했다.

법무부 장관은 대통령의 핵심 법률 참모이자, 국가소송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법률적 대표자다. 그 이전에 박성재는 고검장까지 지낸 법률가다. 계엄법상 계엄 선포는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일 때만 가능함을 모를 리 없다.

그날 밤 대한민국은 평화로웠다. 시민 대다수가 귀가해 TV를 보거나 잠을 청할 즈음이었다. 게다가 포고령에는 ‘전공의 처단’이라는, 비상사태 시에도 언급하기 어려운 내용이 포함됐던 터다. 평생 법전 한 번 들춰본 적 없는 시민들이 직감적으로 위헌·위법성을 깨닫고 거리로 뛰쳐나온 이유다. 대통령의 사전 설명을 들은 법무부 장관이 위헌·위법성을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제 코가 석자입니다.” 박성재는 지난해 12월 11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윤 대통령 변호인단에 합류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돌이켜보면 수사받을 가능성을 이미 염두에 뒀던 것 같다. 이후 변호인단과 함께 법전을 뒤져 형법 16조를 찾아낸 것으로 보인다.

해당 조항은 ‘자기 행위가 죄가 되지 않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 벌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전 세계가 다 아는 군경의 국회 봉쇄를 자신만 몰랐다는 게 ‘오인의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12·3 내란 이후 법원에서 납득하기 힘든 판결·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지귀연 판사의 윤석열 구속 취소, 조희대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 사건 초고속 파기환송은 그중 금·은메달을 다툴 만하다. 박성재 영장 기각도 포디엄(시상대)에 오르기 충분하다.

법원이 박성재 식 방어 논리를 광범위하게 인정할 경우, 향후 어떤 공직자도 보스의 잘못된 행동에 ‘안됩니다’ 할 필요가 없다. 법정에서 ‘그땐 위법인 줄 몰랐다’ 하면 그만이니까.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유의할 대목이 있다. ‘법관의 양심’은 독불장군식 아집을 뜻하지 않는다. 법리와 객관에 근거한 양심을 말한다.

법원 판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국민의 법감정을 거론하면, 일부 법률가들은 이를 법적 무지나 포퓰리즘과 결부시킨다. 오만이다. 국민의 법감정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민주국가의 시민으로 교육받고 경험하며 쌓아올린, 나름의 ‘인식체계’다. 법은 주권자 모두의 것이다. 법기술자들의 노리갯감일 수 없다.

박정호 부장판사에게 묻고 싶다. 지난해 12월 3일 밤, 윤석열의 계엄 선포를 접하고 무슨 생각을 했는가? 공직자이기에 앞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말이다. 이런 질문조차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불경(不敬)인가?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김민아 경향신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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