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집단 ‘양손프로젝트’의 양종욱, 양조아, 박지혜, 손상규(왼쪽부터). LG아트센터 제공
헨리크 입센의 희곡 <유령>은 1881년 노르웨이의 한 시골 마을에 사는 헬렌 알빙 부인의 대저택에서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다. 알빙 부인은 사회적 체면 때문에 남편의 타락한 삶을 감추고 평생 위선을 감수하며 살아온 인물이다. 아버지를 닮을까 해외로 보낸 아들이 돌아오지만, 아들 역시 배다른 누이인 하녀에게 추파를 던지고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선천적 매독 때문에 쇠약해진다. 작품의 노르웨이어 원제 ‘Gengangere’는 ‘돌아오는 자’라는 뜻으로, 과거의 잔재이면서도 사람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끼치는 관습, 관념을 뜻한다.
연극계에서 주목받는 창작 집단 ‘양손프로젝트’는 과거의 ‘망령’을 신작 <유령들>을 통해 동시대적 텍스트로 재구성해 무대로 소환했다. 박지혜 연출은 21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유령>의 등장인물들이 ‘체면’에 사로잡혀 있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의 우리도 ‘악플’이나 사회적 매장과 같이 비슷한 사회적 압력을 느끼며 살아간다”면서 “200년 전 작용하던 ‘유령’이라는 사회적 시선이나 비난의 공포가 현대사회랑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2011년 결성된 양손프로젝트는 연출 박지혜, 배우 손상규·양조아·양종욱 4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의 선정부터 각색, 연출, 연기에 이르기까지 긴밀한 공동 창작의 형태를 취하는 이들은 이전에는 다자이 오사무, 현진건, 기 드 모파상, 김동인의 작품을 탐구하는 작업을 해왔다. 신작 <유령들>은 매년 한 편씩 입센의 희곡을 무대에 올리는 ‘입센 3부작’ 시리즈의 출발점이다.
<유령들>의 공연 모습. LG아트센터 제공
원작에 새로운 층위를 더하는 텍스트 해석과 미니멀한 무대를 배우의 힘으로 채워내는 특유의 공연 방식은 이번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객석이 사면을 둘러싸는 블랙박스형 무대에는 흰색 바닥에 검은색 가구만이 놓여있다. 인물들이 툭 떨어진 듯한 공간에서 관객들은 이야기를 특정 시대를 넘어 감각하게 된다. 박 연출은 “4면 무대다보니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관객에게 말을 직접 걸고 들려주는 동시에 인물을 극한의 상태로 압박해 심리를 구현하는 효과가 있었다”면서 “비현실적이면서 현실적이기도 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작품에 등장하는 5명의 역할을 3명이 맡고, ‘비가 내린다’고 직접 상황을 설명한다든지 지문을 읽는 방식도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양조아 배우는 “서술을 하게 되면 4면 무대 어디에서도 소외되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서 관계를 맺게 하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은 네 사람이 오랜 만에 뭉친 작품이다. 이들은 만나면 저마다 재밌던 이야기를 공유하는 ‘퍼니 스토리’라는 의식과 같은 과정을 통해 팀워크를 유지한다고 했다. 손상규 배우는 “내가 힘든 걸 까먹고 또 ‘지옥불로 걸어들어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하지만 이 안에서는 서로에 대해 전부다 이야기하고 부딪치는 과정을 통해 서로 납득할 만한 작업을 만드는 과정이 귀한 것 같다”고 했다. 양종욱 배우는 “<유령들> 다음 작품은 아직 논의 중인 상황인데 어떤 작품을 이어서 하느냐에 따라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다”면서 “한 작가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할 때 시너지와 창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아트센터 U+ 스테이지에서 10월2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