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민당 총재가 21일 제104대 총리로 선출됐다. 140년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다. 다카이치 총리는 26년간 자민당과의 연정에 참여한 공명당과 결별한 뒤 강경 보수 성향인 제2야당 일본유신회와의 연정을 통해 내각을 출범시켰다. 일본 정치도 한·일관계도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다카이치 내각은 우여곡절 끝에 출범했다.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은 비자금 스캔들 등으로 얼룩진 자민당에 대한 신뢰를 거두며 연정에서 이탈했다. 다카이치가 그 대안으로 손잡은 것이 극우 색채가 가장 짙은 유신회다. 자민당·유신회의 연정 수립 합의서에는 ‘일본 재기’를 위해 헌법 개정과 안전 보장 등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자위대의 존재를 헌법에 명기하는 개헌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강경 보수 인사들이 전진배치된 다카이치 내각이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워 우경화 노선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2년 사망한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핵심 측근이었고 ‘아베노믹스’ 후계자를 자처한다. 보수층이 그를 강력하게 지지한 이유이자, 자민당이 강경 보수로 회귀하고 있다는 징표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사와 영토 문제에선 아베보다 더 극우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다카이치 총리가 자신의 왜곡된 역사 인식을 여과 없이 표출하고 각료 시절처럼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한다면 한·일관계에 빨간불이 켜질 게 불 보듯 뻔하다. 중국을 자극해 동북아시아 정세를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다.
누가 일본 총리가 되더라도 한·일 협력의 중요성은 달라지지 않는다. 한·일은 미·중 전략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국익을 위해서라도 서로 도와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양국의 문화 교류와 인적 왕래도 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가 과거사를 넘어 미래로 나아가자고 다짐한 것도 이런 흐름 속에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재 선거 기간 “한·일관계를 심화시켜 나가겠다. 한·미·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이 말을 지키려면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그가 역사를 직시하는 용기를 내주길 바라지만, 과거 언행으로 볼 때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역사 갈등을 일으키는 말과 행동은 어렵사리 찾아온 한·일관계 개선의 물줄기를 되돌릴 뿐 아니라, 한·미·일 협력도 그르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해 이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한·일이 미래지향적 관계로 선순환하는 첫 단추를 잘 끼우길 바란다.
21일 제104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자민당 총재. AFP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