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지난달 28일 화재 현장 합동감식을 위해 대전 유성구 화암동 국가정보자원관리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이종섭 기자
화재피해를 입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전산실 ‘무정전전원장치(UPS)’ 이전 작업에 불법 하도급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이 하도급업체가 과거 UPS용 리튬이온배터리 이전 작업 경험도 없는 것을 확인했다. 업체는 공사 진행 과정에서 전원 차단 및 배터리 방전 등 기본적인 작업 매뉴얼조차 지키지 않고 배터리를 옮기다 화재가 난 것으로 파악됐다.
대전경찰청 수사전담팀은 국정자원 화재와 관련해 UPS용 리튬이온배터리 이전 작업 과정에서의 전기공사업법 위반 혐의를 확인하고 수사 중이라고 22일 밝혔다. 전기공사업법에 따르면 전기 공사를 도급받은 업체는 다른 업체에 하도급을 주는 것이 금지된다. 그러나 국정자원 전산실 배터리 이전 공사는 하청의 재하청 구조로 진행된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국정자원 5층 전산실 배터리 이전 작업은 대전에 있는 전기공사 업체 1곳 등 2곳이 공동 수주했다. 공동수주업체가 직접 공사를 수행해야 하지만 이들 업체는 제3의 전기공사 업체에 하도급을 줬다.
경찰 관계자는 “이전 작업 당시 실제 공사 수주 업체 관계자는 현장에 없었고, 제3의 업체 직원이 서류상 수주 업체에 입사한 것처럼 꾸며 실제 공사를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터리 이전 작업을 담당한 제3의 업체와 제3업체의 재하청 업체 직원들은 모두 UPS용 리튬이온배터리 이전 공사 경험도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 작업자들로부터 이전에 UPS 설치 공사는 해 봤지만 이전 공사 경험은 없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배터리 방전 등 이전 작업 시 필요한 메뉴얼을 잘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작업자들은 앞서 경찰조사에서 공사 전 UPS로 들어가는 주 전원(메인차단기)은 차단했지만, 배터리팩과 연결된 부속 전원(랙 차단기)은 차단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배터리 이전작업을 위해서는 배터리 충전율을 30% 아래로 낮춰야 한다. 하지만 경찰이 로그 기록을 통해 확인한 화재 당시 충전율은 90%였다. 전문가 자문을 거쳐 보정한 실제 충전율도 80% 정도로 파악됐다.
경찰은 현재까지 국정자원 관계자와 공사·감리업체 관계자 등 29명을 불러 조사하고, 이 가운데 5명을 업무상 실화 혐의로 입건했다. 국정자원에서 압수한 압수물 분석도 대부분 마무리 한 상태다. 다만 정확한 화재 원인 규명은 화재 발생 배터리 등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가 나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달 26일 오후 8시15분쯤 대전 유성구 화암동 국정자원 본원 5층 전산실에서 UPS용 리튬이온배터리 이전 작업을 하던 중 불이 나면서 배터리팩 384개와 전산장비 등이 소실됐다. 이 화재로 정부 업무시스템 709개가 가동이 중단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