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색 댄스화. 7월의 샐비어를 닮은 치마. 화려한 화장, 빨간 귀고리와 머리 장식. 양손에 들린 캐스터네츠. 평소에 할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 그리고 무대가 있다. 온전히 그녀를 위한 무대.
무대로 나와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우아하게, 공작이 날갯짓을 하듯 쳐드는 그녀. ‘미 세비야나’가 플라멩코 기타 반주와 함께 흐른다. 그녀의 얼굴에 순간 환희에 찬 웃음이 번지는 걸 그녀만 알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표정을 본 적 없다. 선천성 시각장애인인 그녀는 불빛 정도만 감지한다. 가까이 있는 글씨, 얼굴은 윤곽만 흐릿하게 보이고, 아예 안 보이기도 한다.
그녀가 본 적 없는 춤. 그녀가 추면서도 보지 못하는 춤. 플라멩코.
“난 내 몸이 취하고 있는 포즈, 플라멩코의 동작들, 내 표정, 내 손 움직임, 내 발 움직임을 볼 수 없어. 플라멩코를 추는 내 모습을 보고 싶어. 거울을 통해서 보지 못하는 게 가장 속상해. 내가 플라멩코를 추는 동영상을 들여다보곤 하지만 움직임만 느껴져.”
1968년생인 그녀와 플라멩코와의 만남은 우연이자 필연. 스페인 집시들과 하층민들이 즐기던, 영혼 가장 깊숙한 곳에 용암처럼 흐르고 있는 감정을 끌어올려 몸짓으로 표현하는 춤이 플라멩코다. “플라멩코는 그야말로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적인 춤. 혼자 온전히 무대를 장악하고 출 수 있는 춤이어서 더 좋아. 혼자 춰도 그 춤이 가진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 있으니까.”
사파테아도(발구름). 원, 투, 스리, 포. 골페(구두 밑창 전체를 바닥에 내리치는 기술). 부드럽게 돌고 있는 손목. 그녀는 우아하면서도 힘 있게 타오르는 한 송이 불꽃 같다. 수시로 바뀌는 몸의 각도. 그녀는 기가 막히게 각도를 잡는다.
플라멩코는 보지 않고 배우기 어려운 춤. 그녀가 플라멩코를 배우게 된 계기는, 꿈에도 생각해본 적 없는 그 춤이 그녀를 선택했기 때문. 시각장애인 여성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하는 그녀. 2006~2007년에 여성회에서 계획한 프로그램에 플라멩코 배우기가 있었다. 스페인에서 그 춤을 배우고 온 분이 시각장애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플라멩코를 가르쳐주셨다. 많은 사람이 신청했다, 한 사람씩 탈락. 어쩌다 보니 그녀 혼자 남게 됐다. 계속해야 하나? 시각장애인들이 플라멩코를 접할 수 있도록 도와준 선생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손가락 하나하나 만져가면서 마노(손가락과 손목의 섬세하고 유연한 움직임이 중요한 플라멩코의 손동작)를 가르쳐주고, 발을 밟혀가면서 발 스텝을 가르쳐준 선생님의 마음. 계속하게 됐고, 공연도 하게 됐다.
“연습, 연습, 연습, 연습… 덕분.”
무대에 서기 위해 그녀는 플라멩코 선생님(양이송 안무가)이 해준 말을 기억해두고 되새김질하며 그대로 반복 연습한다. 이 부분에서는 허리를 더 펴고, 어깨는 내리고, 손동작은 이렇게, 손끝은 이렇게, 발 스텝을 밟을 때 발 모양은… 그리고 배경이 될 노래를 계속 듣는다. 무대에 섰을 때 그녀의 몸이 리듬을 타며 저절로 각도를 잡을 때까지.
“난 리듬을 잘 타. 장애가 내게 가져다준 재능.” 플라멩코를 하는 순간에는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몸에, 영혼에 몰두한다.
“내가 말로 나를 표현하는 건 누구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 하지만 춤으로 나를 표현하는 건 도움이 필요해. 무대가, 음악이, 의상이 있어야 하고, 무대를 익혀야 하고. 춤으로 나를 표현하는 것은 도움이 필요한 일. 도움을 준 모두, 고마워.”
그녀는 많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도전할 수 있는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도전하고 성취감을 느껴봐야 한다. 일곱 살 때 냇가에 빠져 죽을 뻔했던 그녀. 물이 너무 무서워서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던 그녀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수영 선생님이 지도해주는 대로 수영 동작을 따라 했다. 공포감이 덜어지고 재미가 붙으며, 50년 만에 물 공포를 극복하고 자유형, 배영을 익혔다.
그녀의 무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원할 것 같은 무대. 영원할 것 같은 노래, 춤. 그녀가 빙글 돈다. 한 번 더 빙글. ‘더 잘 추고 싶은데, 더 잘 추고 싶은데…’ 플라멩코를 추는 ‘당신은 가장 당신이다’.
김숨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