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몰고 가다가도 아는 누가 걸어가면 모른 척을 한다. 각자의 시간이 있을 것이기에. 작가들이 문우가 회의다 함시롱 각별함이 오히려 ‘거시기’해서 나는 근처에도 안 가고 지낸다. 다만 그래도 같은 동네 사는 소설가 누이랑은 둘이 ‘가끔씩’ 조직 활동을 한다.
누이와 며칠 전 오랜만에 커피를 같이 마셨는데, 내가 요새 하도 바삐 지내니깐(맨정신으로 살기 힘들어서 그런 건데) 그러다 몸 상할라 염려해 여러 가지 잔소리를 시전. 그중 하나가 독일 말. 그란 당케 저란 당케, 우짠 당케, 당케 쇤~ 독일어가 기본으로 되는 동네라서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아먹을 수 있지. “그게 뭐래요?” “으응~ 랑잠 랑잠~” 아! 라앙자아암~, 천천히 쉬엄쉬엄하라는 예쁜 독일 말. 옛날에 어디선가 주워들었는데, 잊고 살았다. 랑잠은 두 번 거듭 말해야 진정성이 느껴져. 누이는 두 번 연결해서 말했다.
경상도에선 말을 통 안 듣는 녀석을 보고 참다참다 한마디, “직이뿌까”. 그 말 나오기 전에 한 살이라도 더 살아본 사람들 말 듣는 게 좋아.
누이가 최근 발표한 신작 소설 ‘사라사 보제이’를 창비 가을호에서 읽었는데, 그 얘기도 한참 들려주어 재밌었다. 노년층이 많은 우리 동네 인사말은 ‘사라서 보장께’가 진짜 맞는 말이다. ‘사라사 보제이’(아무튼간에 안 죽고 살아는 있어야 보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여~의 준말)를 생각한다면 정말 랑잠 랑잠 하면서, 건강 잘 살피고 사람 가려서 사귀고, 고요와 평온을 지켜야 한다.
귀가 후 랑잠 같은 꿀잠을 잤던 그 날부터 기온이 곤두박질. 강원도 어딘 첫눈 소식도 있더라. 내 의지와 분주한 약속들 상관없이 찬 겨울이 오고 있다. 머잖아 폭설로 길도 끊길 테지. 반달곰은 ‘롱잠 롱잠’ 긴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겠지. 긴긴 휴가를 잘 찾아먹는 곰이 부럽다. 나와 당신도 랑잠 랑잠~ 속도를 좀 줄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