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세 살만 덜 먹었으면 저 젊은것들을 확 제꼈을 턴디.” 언젠가 가을 운동회날 1등 상 몫의 노트 세 권을 아깝게 놓친 어머니가 무심코 했던 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황토 먼지 자욱한 운동장, 향나무 아래 앉아 먹었던 붉지도 달지도 않은 우린감과 어머니 탄식이 생각난다. 아마 어머니는 여름방학 내내 아침마다 싸리 빗자루로 학교 운동장 쓸고 받았던 어린 아들의 노트 한 권을 떠올렸음이 분명했다. 그 어머니는 내 세포 하나하나에 미토콘드리아를 가득 남겼다. 세포 발전소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미토콘드리아는 수십년 지난 지금도 근육세포에서 맹활약하며 내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유전자를 절반씩 섞어 자손들에게 골고루 나눠주었다. 그것 말고도 어머니는 따로 여분의 몫을 떼어준다. 짐작하다시피 그것은 미토콘드리아다. 세균만큼 작은 이 소기관에는 과거의 영화를 드문드문 간직한 유전자 몇벌이 있어서 후손의 안위를 알뜰히 보살핀다. 부모는 그것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듯이 추억도 남긴다. 가을걷이 끝난 논 사이를 흐르는 천정천을 막아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바가지로 붕어와 참게 그리고 매끈한 장어를 가마니에 담던 일도 그중 하나다. 손질한 붕어와 장어를 말리고 끓는 간장 부어 게를 갈무리하는 일로 한 해가 끝나면 나는 뒷방 새끼 꼬는 아버지 무릎 아래에서 침 묻혀가며 쌈지 담배를 말곤 했다.
물려받은 유전자와 저마다의 뇌리에 박힌 추억을 안고 세상에 나온 사람들은 자신이 이룬 세계 안에서 유전자 대물림을 되풀이한다. 그렇게 시간이 켜켜이 쌓여 흘러간다. 그러나 대물림의 속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류의 건강과 행복은 모계에 빚진 바가 큼을 알 수 있다. 미토콘드리아가 오직 모계만을 따라 이어지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곧잘 무병장수한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있는지를 살펴 개인의 수명을 저울질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사람들은 담배 피우는 산모를 마땅치 않게 여기지만 가끔 술 마시며 게으름을 피우는 젊은 아빠를 크게 탓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 세상은 게으른 아빠를 영구히 용납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최근 중국 난징대학 연구팀은 아빠들이 열심히 뛰고 운동하면 그 아들이 비만이나 당뇨병에 내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지구력도 넘쳐난다는 연구 결과를 학술지 ‘세포 대사’에 발표했다. 놀랍게도 아빠가 물려주는 것은 유전자의 실체인 DNA가 아니라 그것의 화학적 사촌 격인 RNA였다. 코로나19와 싸울 무기로 썼던 백신이 RNA로 구성되었음을 떠올리자. 열심히 운동하면 아빠의 유전체를 지닌 정자가 팔팔결 달라진다. 정자 안에 약 10종류의 마이크로 RNA가 생겨나 아들에게 전달됨은 물론 운동의 ‘기억’까지 고스란히 되살아난다.
물론 사람을 대상으로 이런 실험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중국 연구진은 수컷 쥐를 2주 동안 쳇바퀴에서 뛰게 한 다음, 전혀 운동하지 않는 암컷 쥐들과 교배시켰다. 그렇게 태어난 수컷 새끼들은 운동과 담을 쌓은 대조군 아비의 새끼들보다 더 오래 달렸다. 지방산을 태워 근육세포를 오래 가동할 수 있었던 덕분이다. 이 말은 근육세포 안에 든 미토콘드리아가 산소를 써서 에너지 효율이 높은 지방산을 충분히 소모했다는 뜻이다. 이는 또한 피부 저장고를 벗어나 간이나 복부 혹은 근육에 지방이 축적될 여지를 아예 없앴다는 뜻이기도 하다. 입으로 들어온 포도당과 지방을 적재적소에 쓰고 넘치지 않게 보관하는 일은 건강한 생명체의 첫손에 꼽을 생리학적 덕목이다.
이 연구 결과는 유전자뿐 아니라 부모의 경험과 생활습관도 유전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결과가 나오기 전에도 과학계는 아비의 스트레스가 자식의 우울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우울증을 물려주는 매개체는 공교롭게도 마이크로 RNA였다. 부모가 겪었던 경험이 유전자의 서열과 상관없이 후손에게 전달되는 현상을 일컬어 우리는 ‘후성유전학적’ 대물림이라고 말한다. 이름이야 어찌 됐든 조상이 살아낸 흔적이 전달되는 사건이 드물지 않다는 것은 명백해 보인다. 중국 연구진은 운동선수의 정자에도 ‘지구력’ RNA가 있음을 확인했다. 흥미롭다.
박사과정 학생이었을 때 수정란으로 인생을 시작한 내 아들의 활력을 복기해본다. 실험에 진척이 없어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아 내심 부끄럽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들에게 지금이라도 토설하는 수밖에. 그래도 가끔은 푸른 가을 하늘을 올려다보았어.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