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남프랑스, 정확히는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지역에 다녀왔다. 이 길고 긴 이름의 지역은 그 낯선 이름과 발음만큼이나 가는 길도 쉽지 않았던 곳이다. 케이블 방송에서 연예인들이 프랑스 남부의 여러 도시를 여행하는 모습을 보며 그곳으로 당장에라도 떠나고 싶은 마음이 일다가도, 그 먼 길을 이동하는 수고를 생각하며 몇차례 마음을 접었던 것도 사실이다.
원래는 파리 근교 샤를 드골 국제공항에 내려 국내선으로 갈아타거나, 튀르키예 등 다른 나라를 거쳐 마르세유까지 가야만 프랑스 남부에 들어선다. 하지만 국내 어느 여행사가 1년에 4번 전세기를 운영하며 인천~마르세유 직항노선을 만들어 사람들을 모집한 덕에 비교적 편하게 떠날 수 있었다.
셰프라는 직업은 음식으로 돈을 버는 일이기도 하지만 음식 때문에 끝도 없이 돈을 쓰는 일이기도 하다. 가끔 남는 돈이 생기면 저축을 하기보다는 남의 가게에 가서 이것저것 시켜 먹는다. 가까이는 국내 도시로, 멀리는 바다 건너 다른 나라로 견문을 넓히고자 다닌다. 회삿돈으로 출장을 가기도 하고 운이 좋아 남의 돈을 얻어 나갈 일도 종종 생긴다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자기 돈을 쓰며 음식을 먹고 다니는 것에 겁을 내지 않는다. 그런 삶 속에서 양식을 만드는 요리사가 어찌 남프랑스를 꿈꿔보지 않았을까. 지중해에 접한 위치와 기후 덕에 풍요로운 농작물, 그것으로 만들어내는 멋진 음식과 포도주까지 너무도 유명한 지역인데 말이다.
그곳 남프랑스에는 관광객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아름다운 해변 도시 니스 같은 곳도 있었고, 아비뇽과 엑상프로방스처럼 전통시장에서 장을 보고 동네 카페에서 술과 차를 마시며 일상을 즐길 수 있는 중소도시들도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남프랑스에서 가장 조용한 지역이 아니었을까 싶은 뤼베롱이라는 작은 도시도 있었다. 그곳에서는 지역의 농장을 방문할 기회도 있었는데, 수많은 품종의 무화과와 멜론 농사를 직접 보고 온 것은 내게 꽤 귀한 경험이 되었다. 강과 장미가 유명하다는 라 콜쉬르루의 골목을 걸으며 지역 요리를 맛본 것이며, 마르세유 레 구드 마을에서 먹은 진짜 부야베스의 맛 역시 잊지 못할 일이었다.
프로방스 특산품인 라벤더꿀과 올리브유 같은, 요리사로서 너무도 탐이 나는 재료들과 교황의 술이라 불리던 샤토뇌프 뒤 파프의 적포도주, 그 외 지역의 수많은 로제와인, 프로방스에서 난다는 송로버섯과 니스의 유명한 병아리콩 빈대떡 소카처럼 처음 듣고 본 음식의 맛을 보며 많은 공부를 하고 왔다. 또 계획보다 많은 돈을 쓰고 오기도 했다. 요리사의 삶이 이런 것이니 어쩌겠는가. 하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을 쌓았고, 이 모든 것이 언젠가 요리며 디저트에 묻어 조금 더 나은 것을 만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제 이름마저 꿈같았던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의 기억을 뒤로하고 생업에 충실해야 한다. 음식도 만들고 와인도 팔고 강의도 나가야 한다. 그리고 또 그렇게 돈을 모아 남의 가게며 나라며 찾아다니며 이것저것 배워야 한다.
박준우 셰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