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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세상] 전투적 민주주의의 취약성

입력 2025.10.26 19:54

수정 2025.10.26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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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탓일까. 해외의 고명하다는 선생들의 강연을 우리나라 매체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최근 스티븐 레비츠키의 연설도 그중 하나다. 동료 대니얼 지블랫과 함께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로 유명한 그가 ‘민주주의 방어를 위한 세 전략’을 소개한 기사를 ‘한겨레’에서 만났다.

평소 두 저자의 글은 나오는 대로 보는 편이라 흥미롭게 읽던 중, 기시감이 들어 확인해보니 언젠가 봤던 내용이다. 2024년 10월 트럼프의 재선을 앞두고 두 저자는 ‘트럼프를 저지할 네 가지 길이 막힌 지금, 한 길은 남았다’는 기고문을 뉴욕타임스에 실었다. 파시스트 또는 독재자가 될 수도 있는 권위주의적 인물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커진 시점에서 미국 민주정을 구할 방법을 모색했던 글이다.

당시 기고문은 트럼프 집권을 막기 위해 민주주의자들이 ‘자유경쟁의 원리’만 붙잡고 있을 수 없다는 자명한 주장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미 미국에서 전투적 민주주의를 작동하거나, 정당이 자체적으로 극단주의자를 걸러내거나, 반극단주의 연합을 꾸려 위험 세력을 봉쇄할 길이 막혔다며, 이제 마지막 길밖에 남지 않았다고 호소한다. 기업가, 종교 지도자, 노동조합 지도자, 전직 공무원 등 가릴 것 없이 트럼프에 반대하는 시민사회 역량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장하게 들렸다.

이번 ‘한겨레’가 소개한 강연은 아마 그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고쳐 쓴 내용이리라. 평소 두 저자의 냉철한 분석에 더한 희망찬 제안에 주목했던 나는 그때 비장한 호소에 살짝 떨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들이 2023년 발표한 <소수의 폭정(Tyranny of the Minority)>(어쩌다 이 제목을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로 따라쟁이처럼 번역했는지 알 수 없다)에서 공들여 제시한 제도개혁론이 무색해졌다고 봤기에 씁쓸했던 감상도 남아 있다. 1년 만에 희망찬 제도개혁론이 비장한 호소가 됐다면 정말 위험해졌다고 느꼈다.

이번 서울 강연 중에 애매한 지점이 있다. ‘전투적 민주주의’ 부분이다. 전투적 또는 방어적 민주정이란 헌법적 원리인 법치주의에 따라 반민주적인 극단 세력을 불법화하는 제도를 갖추어 적용하는 정체를 말한다. 1950년대 신나치 정당인 사회주의제국당과 독일공산당을 해산한 독일이 대표적이다. 2014년 통합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이 헌법 위반이라며 해산 결정을 내린 우리나라도 여기에 속한다.

레비츠키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의 반란 조항을 적용해 합법적으로 트럼프 출마를 아예 가로막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유감이라는 건 알겠다. 그렇다면 그는 미국도 위헌정당을 해산하고 정치적으로 위험하다고 낙인찍힌 자는 정치활동 자체를 못하게 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일까.

민주정은 놀랍게도 자신을 철통같이 방어하는 수단을 완비하는 순간 민주정이라고 부를 수 없게 된다. 이는 레비츠키 자신이 한 말이기도 하다. 민주주의 원리에 인민 주권과 더불어 자유와 평등을 포함한 기본권 보장이 필수적인데, 이는 정치적으로 생각이 다른 세력이나 집단에 대한 존중과 관용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민주정을 방어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생각이 다른 세력이나 집단을 반헌법적이라 낙인찍고, 그래서 전투적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비민주적이라는 뜻이다.

다른 사례를 들 것도 없다.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호소한 내용을 상기해보자. 그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괴물이 됐다며,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반국가 세력을 척결해서 국가를 정상화하겠다고 했다. 이런 종류의 극단적 피해주의, 독단적 배제주의, 전투적 처벌주의가 곧 민주주의 적들이 주로 갖는 생각들이다. 전투적 민주주의란 취약하고, 고립되고, 쇠락하는 민주정의 불안을 증거할 뿐인지도 모른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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