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견제·사회 의제 중요하지만
산업·서비스·일자리 발전 내다보는
미래지향적인 진보 정책도 펼쳐야
이를 위해 ‘국민적 공감’은 필수
지금 한국과 미국의 정치 현실은 정반대에 놓여 있다. 한국에서는 중도좌파 성향의 대통령이 국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 미국에서는 권위주의적 성향을 지닌 우파 포퓰리스트 대통령이 백악관과 의회를 모두 장악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의힘처럼, 미국 민주당은 지금 ‘정치적 야생’ 상태에 놓여 있다.
하지만 2024년 대선 패배 이후, 민주당 안에서는 어떻게 다시 권력을 되찾을 수 있을지를 두고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논의는 출범 1년차를 맞은 이재명 정부에도 흥미로운 시사점을 던진다.
하나의 견해는 미국이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경쟁적 권위주의(competitive authoritarianism)’ 체제로 빠져드는 위험에 민주당이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체제에서는 야당이 형식적으로는 존재하지만, 행정부 권력이 점점 더 견제받지 않게 되고 정권 교체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한국에서는 계엄령 선포가 이 위험을 뚜렷하게 드러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문제의식은 2024년 미국 유권자들에게 충분히 와닿지 않았고, 정치에 무관심한 층에서도 여전히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견해는 정치적 공세로 당내 좌파 진영에서 나오며, 대기업의 막강한 영향력에 초점을 맞춘다.
대기업은 시장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가격을 높이고 소비자 선택권을 줄이는 방식으로 그들의 경제적 힘을 행사한다. 더 나아가 로비와 인맥 거래를 통해 정치적 영향력도 행사한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억만장자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가 내세운 가장 큰 정치적 성과가 부유층에 유리한 대규모 감세였다는 점을 끊임없이 지적한다.
이 시각에서 민주당의 과제는 기업 권력을 통제하고 분배 정의라는 본래의 핵심 의제로 돌아가는 것이다. 여기에는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 제도를 복원하는 것은 물론, 붕괴된 미국의 의료 시스템을 바로잡는 일도 포함된다. 중산층을 포함한 다수 가정이 혜택을 보던 건강보험 보조금 폐지는 정부 셧다운 사태를 불렀고, 민주당은 이 문제가 2026년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세 번째 목소리는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민주당이 핵심 공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민주당이 정부의 효율성을 높이고, 현 정권의 ‘경제적 연줄주의(cronyism)’에 맞설 수 있는 성장 중심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에즈라 클라인과 데릭 톰슨이 펴낸 책 <풍요(Abundance)>는 이런 논쟁에 불을 지폈고, 민주당 내부에서 뜨거운 논의를 촉발시켰다.
두 저자는 민주당이 장악한 주정부와 시정부들이 인프라 구축에 실패했고 주택비 상승을 방치했다고 비판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캘리포니아 고속철도 사업이다. 북부와 남부를 잇는 노선이 수십년째 지연된 끝에 결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베이커즈필드까지의 짧은 구간만 완성될 가능성이 크다. 복잡한 용도 지역 규제와 환경 심사 절차가 비용 폭등과 지연을 불러온 원인으로 지목된다.
주택 가격 문제는 클라인과 톰슨이 제기한 비판의 핵심이며, 이는 서울에서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민주당이 개발업자들과 손을 잡더라도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민주당이 집권한 여러 도시에서 심화되고 있는 노숙 문제 같은 만성적 사회 문제에도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더 넓게 보면, ‘풍요파’는 녹색 에너지 전환,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 초고속 인터넷 보급(한국은 이미 오래전에 달성한 과제다) 같은 대담한 목표를 추진할 신중한 산업정책을 요구한다.
이 논쟁들은 이재명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운영 방향을 고민하는 데에도 참고할 만하다.
계엄 사태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기업 권력을 견제하며,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것은 진보정치의 핵심 과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산업·서비스·일자리의 발전을 내다보는 미래지향적 비전, 즉 폭넓은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진보적 산업정책이 필요하다.
이 대통령은 정부 주도의 발전 모델이라는 역사적 유산을 바탕으로 출발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성공시키려면 노동계와 시민사회뿐 아니라, 민간 부문의 참여와 공감도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스테판 해거드 UC 샌디에이고 석좌특별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