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다자회의 무대서 한·중·일과 양자회담만…전문가 “방해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및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아시아 순방길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APEC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고 한국·일본·중국 등과 양자회담만 하고 돌아갈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투자 자유화, 경제 통합 등을 논의하는 APEC 다자회의에 쏠릴 관심을 그와 상충하는 양자 무역협상으로 모두 빨아들이면서 APEC의 ‘방해꾼’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매슈 굿맨 미국외교협회 수석연구원은 25일 한미경제연구소(KEI) 팟캐스트에서 “트럼프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APEC 정상회의 자체는 불행히도 잊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지 허친슨 국제한국학협의회 이사도 38노스 기고문을 통해 “개최국인 한국은 다자간 협력의 중심이 아닌 강대국 간 압박의 한가운데 놓이게 됐다”며 “그 속에서 (한국 같은) 중견국이 얼마나 많은 권한과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중국 등과의 양자회담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해 “그들(중국)은 양보해야 한다. 우리도 그럴(양보할) 것으로 본다”면서 “좋은 회담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빅딜’이 이뤄지기보단 휴전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퍼트리샤 김 브루킹스연구소 중국 담당 연구원은 미·중 정상회담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회담 목표는 정상 간 개인적 관계를 활용해 미·중 무역협상 진전에 신호를 주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양측 실무진의 대화가 사실상 휴전 연장에만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포괄적 합의가 나오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아시아그룹의 한셴린 중국 담당 이사도 “큰 양보는 없을 것”이라며 “구조적 분쟁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CNBC에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교역 비중이 높은 아세안을 상대로 중국 견제에 동참해달라고 요구할 것으로 관측되나 이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폴리티코는 미국이 중국의 수출 우회로 역할을 하는 베트남·인도네시아 등과 무역합의를 하지 못하면 미·중 정상회담에서 더욱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되지만 이번 순방에서 관세협상의 진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바버라 와이젤 전 미국 무역대표부 고위 보좌관은 “동남아 국가들은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싶지 않다고 거듭 밝혀왔다”고 폴리티코에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무역 관련 공동합의문이 나올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순방길에서 취재진에게 “그들이 (타결할) 준비가 돼 있다면 나는 준비됐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측이 마지막 협상안을 던진 후 한국 측이 수용하기를 기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대통령실은 신중한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북·미 깜짝 회동 가능성을 꺼내 들고 있지만, 이슈를 이슈로 덮으려는 전략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