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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은 어르신들의 '장기 성지'로 유명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주로 어려운 처지의 노인들이 지금도 탑골공원에 모이는 이유입니다.

대표적인 오락거리인 장기판이 없어진 지금도 무료급식을 이용하려는 노인들은 여전히 탑골공원에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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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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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골공원 장기판’ 사라졌지만···오늘도 간다, 고독을 잊으러

입력 2025.10.27 07:00

  • 조해람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7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동훈 기자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지난해 5월7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성동훈 기자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은 어르신들의 ‘장기 성지’로 유명했습니다. 수도권 곳곳에서 모인 노인들은 담벼락을 따라 죽 늘어선 장기판에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며 무료함을 달랬죠. 그런 모습도 이제는 옛말입니다. 종로구청과 종로경찰서가 지난 7월31일부터 음주·소음 등을 이유로 탑골공원에서 장기판 이용을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탑골공원 장기 금지령’은 한국 사회 노인들의 여가 문화, 더 나아가 노인들의 열악한 사회안전망을 조명하게 했습니다. 공중도덕도 중요하지만, ‘왜 노인들은 매일 그곳에 모일 수밖에 없었나’를 먼저 질문해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은 주간경향이 탑골공원에서 직접 만난 노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립니다.

“너무 오래 살면 어쩌나” 걱정하지 않도록

탑골공원은 오랫동안 수도권 노인들의 여가 생활을 책임져 왔습니다. 많게는 20개가 넘는 장기판이 동시에 깔리고, 장기판 하나에 10~12명씩 모여 골목은 늘 북적였습니다. 장기판이 사라진 지금도 공원 안에는 신문을 읽거나 처음 만난 이와 대화하는 노인들이 많습니다. 서울뿐 아니라 경기·인천 등 수도권 노인들도 지하철을 타고 탑골공원을 찾습니다. 경기 부천에서 온 한 70대 시민은 “매일, 365일 탑골공원에 온다”며 “그냥 여기 주변을 하루종일 걷는다”고 했습니다.

노인들은 왜 동네 공원이나 경로당 대신 굳이 먼 탑골공원을 찾을까요? 그 이유를 들여다보면 오늘날 한국 노인들의 곤궁한 처지가 드러납니다. 가장 큰 이유는 ‘돈’입니다. 여러 무료급식소가 있고 이발비·커피값도 저렴합니다. 노인들은 지하철 운임이 무료이기 때문에 경기권에서도 쉽게 올 수 있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 등 주로 어려운 처지의 노인들이 지금도 탑골공원에 모이는 이유입니다.

대표적인 오락거리인 장기판이 없어진 지금도 무료급식을 이용하려는 노인들은 여전히 탑골공원에 모입니다. 다만 체류 시간이 줄었습니다. 무료급식소에서 점심을 먹고 난 뒤 오후에는 종묘광장공원이나 보라매공원, 동묘공원 등으로 흩어집니다.

노인들이 탑골공원을 찾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외로움’입니다. 탑골공원 인근에는 2000원에 영화를 볼 수 있는 실버영화관도 있고, 노인을 대상으로 한 행사도 자주 열립니다. 무엇보다 같은 처지의 말동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 온종일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노인의 경우, 아는 사람이 많은 동네 경로당보다 이런 익명성을 편하게 느끼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회생활의 폭이 줄어든 노인들에게 탑골공원은 잠시라도 외로움과 고립감을 잊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서울 노원구의 한 고시원에 혼자 사는 김상철씨(83·가명)는 복지센터가 쉬는 주말이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탑골공원에서 시간을 보냅니다. 75세까지 건설 현장에서 일했고, 지금은 생계급여를 받으며 생활을 유지합니다. 김씨는 “집에 혼자 있으면 옛날 생각도 나고, 별생각이 다 든다”며 “늙으니까 고독감이 생기는 게 힘들다”고 했습니다.

노인에게 사회적 연결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2023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65세 이상 노인 중 독거노인은 32.8%에 달했습니다. 2020년 19.8%보다 크게 올랐죠. 독거노인의 24.4%가 외로움·불안을 경험했고, 13.5%는 이웃과의 교류가 단절됐습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는 노인 4분의 1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1번 이상 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노인이 정자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준헌 기자

지난 2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한 노인이 정자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이준헌 기자

탑골공원 장기판 철거를 음주·소음 등 문제로만 바라본다면 많은 것들을 놓치게 됩니다. 최혜지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간경향에 “장기판을 치운 종로구를 비판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이분들이 거리가 먼데도 탑골공원에 왜 오는지 물어야 한다”며 “노인들이 장기를 두면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면 낮에 거기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들에게 필요한 공간이나 일에 대한 기회 등을 제공하지 못한 사회의 문제는 없는지 등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노인들은 외로움 외에도 여러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곳곳에 ‘노 시니어존’이 생기는 등 사회적으로 차별을 겪습니다. 지난해 노인학대 건수는 7167건으로 10년 전 3532건보다 2배 늘었습니다. 부족한 사회안전망과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수입 감소도 겪습니다. 공공돌봄·요양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20여개 시민사회단체가 함께하는 노인인권기본법제정추진연대가 지난달 ‘노인인권기본법’ 입법 청원에 나선 배경입니다. 이 법안은 노인의 고용촉진·직업안정·고용평등 등 노동권 보장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책 수립을 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연명의료에 관한 노인의 의사 존중, 기후위기로부터의 보호, 지능정보서비스 접근·활용권 보장, 노인 차별을 조장하는 혐오표현 금지 등 내용도 담겼습니다.

노인인권기본법이 제정되면 한국은 노인의 인권을 개별 법으로 보장하는 첫 국가가 됩니다. 법안 논의에 앞장선 지은희 전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원장(전 여성부 장관)은 주간경향 인터뷰에서 “한국은 고령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됐고,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다”며 “우리 사회가 나이 드는 것이 걱정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모범이 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오래 사는 일이 공포가 되지 않는 사회를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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