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26일, 인천 서구 백석동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에 쓰레기가 쌓여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종량제봉투에 넣어 배출하면 당장 눈 앞에선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 같지만, 쓰레기의 여정은 이때부터 시작이다. 종량제 봉투 중 많은 양은 그 지역 공공소각장으로 간다. 소각장은 하루에 태울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 소각장이 감당하지 못한 쓰레기는 매립지로 간다. 봉투째 묻힌다. 매립지도 쓰레기를 무한 수용할 수는 없다. 지역 곳곳의 매립지들은 빠르게 ‘포화 상태’가 돼 갔다. 특히 인구 절반이 사는 수도권은 쓰레기를 묻을 곳이 없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2021년 종량제 쓰레기봉투를 그대로 땅에 묻는 ‘직매립’을 차차 금지하기로 합의했다.
수도권에서는 당장 내년 1월1일부터 직매립이 금지된다. 4년 동안 마땅한 해결책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공공소각장도 새로 짓지 못했고, 대체 매립지를 구하기 위한 공모도 번번이 실패했다. 인천과 경기 김포에 있는 수도권매립지에는 쓰레기가 지난해에만 107만2000t 반입됐다. 하루 평균 2937t의 쓰레기가 몰렸다. 이 중 절반 가까운 양이 서울에서 왔다. 인천은 매립지 종료를 선언했지만 새로운 소각장이나 매립지가 되겠다는 동네는 나타나지 않았다. 국내 인구 절반이 배출하는 쓰레기가 갈 곳이 없어질 상황이다. 각 지자체는 공공소각장에서 다 태우지 못한 쓰레기를 다른 지역에 위치한 민간소각장에 보내 태우는 안을 검토 중이다.
그런데 봉투째 쓰레기를 태우거나 묻어버리지 않고 직접 종량제 봉투를 뜯어 본 지자체가 있다. 강원 고성군이다. 봉투 속에서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닐 쓰레기를 골라내는 방식으로 쓰레기 양을 대폭 줄였다. 일반 쓰레기를 다시 분류하는, 이른바 ‘전처리 시스템’을 도입한 고성군 폐기물 종합처리시설을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과 함께 지난 20일 방문했다.
종량제 봉투 뜯어 ‘폐비닐’ 분류…“쓰레기양 절반까지 줄일 수 있다”
고성군 폐기물 종합처리시설에는 하루 평균 30t가량의 일반 쓰레기가 들어온다. 쓰레기차가 종량제 봉투를 쏟아내고 나면 ‘전 처리 시스템’이 가동될 차례다.
전처리 시스템은 가장 먼저 쓰레기봉투를 뜯는다. 이 과정에서 부피가 아주 큰 쓰레기들은 한 차례 부서진다. 봉투에서 나온 쓰레기들은 컨베이어 벨트 위에 올라간다. 자력 선별기를 통과하면서 금속류 쓰레기가 분리된다. 나머지 쓰레기는 ‘디스크 선별기’에 쏟아진다. 동그란 원통 모양의 디스크가 여러 개 돌아가는 사이로 무거운 쓰레기들이 아래로 떨어진다. 비닐을 포함해 가볍고 부피가 큰 쓰레기는 물결치듯 앞쪽으로 이동한다. 다음에는 ‘타격식 선별기’ 차례다. 이 선별기는 쓰레기를 때려서 쓰레기에 묻은 음식물이나 물기 등을 털어낸다. 마지막으로 디스크 선별기를 한 번 더 거치면, 꽤 깨끗한 폐비닐이 모습을 드러낸다. 쓰레기의 30% 이상이 비닐로 분리된다. 비닐은 압축해 쌓는다.
고성군 전처리 시스템은 한국환경공단 상생협력 실증 프로그램 사업에 선정되면서 지난해 말 설치됐다. 올해는 시범 운영 중이며, 내년 초부터 정상 가동한다. 고성군은 도시보다 쓰레기양이 적고, 관광객이 버리고 간 쓰레기에 음식물이 섞여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도시에 폐비닐 선별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쓰레기양이 더 많은 만큼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고, 비닐에 유기물이 덜 묻어있는 만큼 질 좋은 폐비닐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일 강원 고성군 폐기물 종합처리시설의 전 처리 시스템에서 무거운 쓰레기들은 아래로 떨어져 왼쪽으로 분리된 폐비닐은 오른쪽 아래 방향으로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오경민 기자
폐비닐만 걷어냈을 뿐인데 쓰레기양은 50~70%로 줄었다. 황석호 고성군 환경과 환경시설팀장은 “이 시스템을 통해 관내 종량제 쓰레기를 30~40% 후반대까지 줄일 수 있다”며 “사업 전에는 해마다 8500t 가까운 쓰레기를 소각장으로 보냈지만, 사업 후 소각 쓰레기는 연 5900t으로 줄어들 전망”이라고 말했다.
쓰레기양이 줄면 매립지 수명도 늘어난다. 고성군은 전 처리 시설 도입으로 현재 사용하는 매립지 수명이 4년가량 늘어날 것으로 본다. 황 팀장은 “2027년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정됐던 매립지를 2032년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됐다”며 “소각장 운영도 더 원활해진다. 전처리 시스템을 거친 쓰레기는 봉투째로 태울 때보다 ‘균질화’돼 더 태우기가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분류된 폐비닐은 재활용된다. 열분해시설이나 고형폐기물연료(SRF) 업체로 보내져 폐비닐의 30%는 열분해유로, 70%는 고형연료로 다시 태어났다.
전처리 시스템 시설을 설치한 씨아이에코텍의 조일호 대표는 “폐비닐 분리에 복잡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며 “타격과 건조 같은 간단한 공정만으로 괜찮은 질의 비닐 분리 가능하다”고 말했다. 씨아이에코텍이 개발한 타격식 전처리 시스템은 3년 전 경북 의성군 쓰레기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사용됐다. 당시 이 업체는 쓰레기의 40%가량을 차지한 폐비닐을 자원으로 회수하면서 쓰레기를 단기간에 저비용으로 처리했다.
‘일반 쓰레기’ 속 3분의 1이 플라스틱…자원이 될 수 있을까
지난 20일 강원 고성군 폐기물 종합처리시설 앞에 ‘전 처리 시스템’을 거친 폐비닐이 압축돼 쌓여있다. 오경민 기자
종량제 봉투 속에서 가장 함량이 높은 건 단연 플라스틱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종량제봉투 내 플라스틱 함량은 2013년 8.8%에서 2022년 29.9%로 가파르게 늘었다. 1인 가구 증가, 구독형 배달 서비스 확산 등으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이 증가한 영향으로 추정된다. 각종 간편식, 반 조리상품의 발달로 식품 포장재, 비닐류 사용이 늘었다. 종량제 쓰레기 속 ‘폐비닐’만 분리해도 생활 쓰레기양과 쓰레기 소각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폐비닐은 열분해유 원료가 되거나 시멘트 공장에서도 보조연료로 사용하는 등 재활용이 가능한 자원이기도 하다. 국제사회는 항공업계에 지속가능항공유(SAF) 사용 비중을 높일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역시 SAF의 일종이다.
폐비닐 열분해유로 화학적 재활용하거나 보조연료로 열적 재활용하는 산업은 유해물질을 대기 중으로 배출할 우려가 있고 탄소를 배출하는 산업이라는 점에서 ‘그린워싱’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궁극적으로는 플라스틱 생산 자체를 줄이는 폐기물 감량 정책, 재질을 단순화하고 시민들이 비닐을 분리 배출할 수 있게 하는 ‘물질 재활용’ 중심 정책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환경단체들은 주장한다.
홍 소장은 “오염이 심한 폐비닐의 경우 종량제 봉투로 배출되는 경우가 많고, 화학적 재활용과 열적 재활용도 플라스틱 소각보다는 탄소 배출이 적다”며 “소각장을 증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닐을 잘 선별하고 자원으로 쓸 수 있는 전처리 시설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