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로 불리던 미국의 1920년대는 새로운 경제구조를 만들어냈다.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가 만들어낸 대량생산 시스템이 자동차와 라디오를 보급했고, 자동차는 고속도로 등 물류를, 라디오는 광고 등으로 소비를 촉진시켰다. 이들 산업은 할부금융 등 신용의 기반 위에 서로를 자극하며 자본의 순환적 구조를 만들었다.
피츠 제럴드는 이 시기를 ‘재즈의 시대(Jazz Age)’라는 말로서, “기적의 시대이자, 예술의 시대이며, 과잉의 시대이자 풍자의 시대였다”고 했다. 그러나 자본이 실물보다 빠르게 돌기 시작하자 재즈의 리듬은 점점 가팔라졌고, 1929년, 대공황으로 그 재즈는 멈췄다.
얼마 전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은 “많은 자산이 거품 영역에 들어섰다”고 경고했다. 어느 금융기관의 조사에서 글로벌 펀드매니저의 40% 이상이 ‘AI 버블’을 세계 최대 위험요인으로 꼽았다. AI 산업의 중심에 선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은 4조달러를 돌파했고, MS·애플·알파벳을 포함한 ‘AI 빅7’의 시가총액은 미국 S&P500 전체의 35%를 차지한다. 자본이 자본을 키우고, 기대가 수익을 대체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MS는 오픈AI에 130억달러를 투자했고, 오픈AI는 다시 엔비디아와 AMD에 칩 공급계약을 맺었다. 엔비디아는 블랙록과 함께 400억달러 규모의 데이터센터 인수를 추진하는데, 부채를 포함하면 최대 1000억달러 규모까지 투자확대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 거대한 순환 고리는 마치 금융시장의 신용창조처럼 “AI 신용창조”라 불러도 무색하지 않을 정도이다. 기술이 아니라 자본이 기술을 증폭시키는 구조로 바뀌는 듯한 양상이다.
물론 지금은 2000년의 닷컴버블과는 다르다. 그때는 기업들이 매출도 이익도 없이 꿈만 팔았다. 그러나 지금의 AI 기업들은 분명 실적이 있다. 엔비디아의 올해 매출은 122% 증가했고, 순이익은 290억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AI 기반 클라우드 매출도 전년 대비 34% 늘었다. 이는 허상이 아니라 현상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문제는 현상이 신념으로 바뀌는 순간에 생긴다. 이익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밸류에이션이 무제한 확장될 때, 시장은 다시 신념을 만든다.
닷컴은 ‘개념의 버블’이었지만, AI는 ‘실적이 있는 버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버블의 본질은 크기가 아니라 구조다. 자본이 스스로를 먹여살리는 순간, 과열은 시작된다. 현재 시장의 순환은 정교하지만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AI 기업 간 상호투자, 반도체 공급망, 데이터 인프라 투자까지 모두 서로의 성장률을 담보로 삼고 있다. AI 관련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은 30~50배로, S&P500 전체 평균(Forward P/E 23배)을 훨씬 능가한다.
시장은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자본의 자기증식 속도에 매혹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1920년대 미국의 신용 루프, 1980년대 일본의 담보 루프, 그리고 지금의 AI 실적 루프는 모두 하나의 원리를 공유한다.
“자본이 실체를 믿기보다, 자기 믿음을 믿기 시작할 때 버블은 형성된다.” 1980년대 일본은 부동산 담보가 신용을 만들었고, 그 신용이 다시 자산가치를 끌어올렸다. 결국 담보가 무너졌을 때, 일본 경제 전체가 흔들렸다.
기술의 실체보다 기대의 속도가 앞서가고 있는, 오늘의 AI 생태계의 구조는 과연 다를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버블의 존재가 아니라 버블의 구조다. 지금의 시장은 매혹적이다. AI가 생산성을 높이고 산업을 혁신하며 새로운 부를 창출하고 있다. 그러나 ‘재즈의 시대’가 그랬듯이, 리듬이 빨라질수록 불협화음은 커진다.
버블은 과잉의 결과가 아니라 자본이 자기 자신을 믿기 시작한 순간 만들어진다. 신용이 그랬고, 담보가 그랬다. 이제 실적이 신념으로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술은 미래를 바꿀 수 있지만, 자본이 너무 빨리 미래를 믿을 때 그 믿음은 역사의 불협화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과연 재즈는 계속 연주될 것인가?
이윤학 프리즘 투자자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