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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화살

입력 2025.10.29 20:18

수정 2025.10.2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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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의 옆집물리학]시간의 화살

50대가 저물어가는 요즘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흐른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쏜살같다고 표현하듯, 미래로만 흐르는 시간을 우리는 날아가는 화살에 자주 비유한다. 쏜살같이 앞으로만 나아가는 시간의 화살은 미래를 향한다.

노화에 대한 나의 주관적 경험이 시간의 화살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물에 떨어뜨린 작은 잉크 방울은 널리 고르게 퍼질 뿐, 다시 작은 방울로 모이지 않는 것을 떠올려보라. 시간의 화살은 주관적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봐도 같은 객관적 사실로 보인다.

시간을 뜻하는 변수 t를 -t로 바꾸는 것이 시간의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을 뒤집는 것에 해당한다.

이렇게 시간을 뒤집어도 뉴턴의 운동방정식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뉴턴이 보여준 시간의 화살은 촉도 깃도 없어 앞뒤가 같은 셈이다. 줄에 매단 추의 진자운동처럼, 고전역학을 따르는 입자 하나는 미래와 과거를 향하는 두 시간 흐름이 똑같은 방정식을 만족해 시간의 화살에 앞뒤가 없다.

지금까지의 글을 읽고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면 제대로 본 거다. 흰머리는 늘고 체력은 떨어져 다시 젊어질 수 없고, 잉크 방울은 고르게 퍼질 뿐 다시 모이지 않는다. 이런 경험은 시간의 화살에 명확한 방향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만, 놀랍게도 물리학의 근본 법칙에는 시간의 화살이 없다. 내 몸과 잉크 방울같이 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시스템에는 시간의 화살이 있는데, 커다란 시스템을 이루는 작은 입자 하나는 과거와 미래를 구별하지 않는다. 미시적인 시간의 화살은 앞뒤가 같은데, 미시가 모여 만들어진 거시적인 시간의 화살은 앞으로만 날아간다. 앞뒤가 같은 여러 막대를 한 두름으로 묶었더니 전체 두름에는 앞뒤가 생긴 셈이다. 오랫동안 여러 물리학자를 고민에 빠뜨린 문제다.

시간의 화살에 대한 표준적인 설명이 있다. 고르게 퍼지는 잉크 방울의 여러 입자를 생각해보자. 작은 부피에 모든 입자가 모여 있을 때보다 고르게 퍼져 있을 때 입자들의 위치에 관련된 경우의 수가 더 크다. 입자 하나가 있을 수 있는 위치로 허락되는 가짓수는 공간의 부피가 커지면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가능한 경우의 수가 늘어나면 함께 늘어나는 양으로 정의되는 것이 엔트로피여서, 결국 시간이 지나면 경우의 수가 훨씬 더 커서 발생할 확률도 더 큰 상황을 보게 마련이라는 것이 엔트로피 증가 법칙의 자명한 내용이다. 통계역학의 엔트로피가 늘어나는 방향이 바로 시간의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이라는 설명이다.

입자들이 아무 곳에나 있는 무질서한 상태의 엔트로피가 더 크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다시 생각해보라. 입자 하나하나를 구별해 모든 가능한 구성을 완벽하게 알아낼 수 있는 지성이 있다면 이 지성은 우리가 무질서하다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온갖 여러 상태를 하나하나 구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0번째 페이지의 3번째 단어 이후의 철자를 알파벳순으로 늘어세운다는 엄밀한 규칙으로 책들을 꽂아놓은 책장이 있다면, 규칙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무질서해 보여도 이 규칙을 아는 사람의 눈에는 딱 하나의 경우의 수만 있는 완벽히 정돈된 상태일 수 있다. 그렇다면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이유는 우리가 대상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차이에 눈감아 전체를 뭉뚱그려 보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된다. 만약 그렇다면 엔트로피 증가로 시간의 화살을 설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 말이 맞다면 시간의 화살은 자연의 객관적 속성이 아니라 대상을 흐릿하게 볼 수밖에 없는 우리 인식의 한계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얘기가 된다.

시간은 인식 주체의 밖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무엇인지, 아니면 자연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기술하기 위해 우리가 편의상 도입한 도구일 뿐인지도 아직 확실치 않다. 우리말의 시간에는 사이를 뜻하는 한자 간(間)이 들어 있다. ‘시간’에는 두 사건 사이 비어 있는 무언가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사건이 없어 변화가 없다면 시간은 없는 것일까? 사건이 없어도 시간은 존재하는 무엇일까?

나는 여전히 시간이 객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100%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차이에 눈감을 때만 시간이 흐른다면, 세상의 모든 미시적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무한 지성의 눈에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으로 보일까? 시간도 결국 우리 인간의 주관적 한계에 붙여진 이름일 뿐일까? 시간은 무지로 흐르는 걸까? 시간은 쏜살같이 한 방향으로 흘러도 시간에 대한 나의 무지는 해결될 기미조차 없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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