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를 ‘시엄씨’라고도 불러.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어려운 사이지. 내 아들을 납치해간 며느리가 내게 잘하면 모르겠지만, 못하면 노여움이 생기게 마련. 살아주기만 해도 고맙다는 말은 마음을 싹 비우고 난 뒤의 소리렷다. 예전에 한 며느리가 시집살이에 고달파 교회엘 첨 갔어. 교인들이 주기도문을 외는데, 귀에 쏙 들어오는 말에 아찔 감동. “시엄씨는 들어오지 말게 하옵시고~” 허걱,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가 그렇게 귀에 들린 것.
지난달 성경책 마가복음을 전남 방언으로 옮겨서 책을 냈다. 그 일로 여기저기 인터뷰도 하고, 북토크 같은 것도 해본다. 산속에 들어앉은 기도원에 가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로 이른바 방언이 터져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지. 난 전남 방언을 기본으로 장착하고, 이 방면 번역 성경까지 냈으니 방언의 대가라고나 할까. 많은 며느리들이 시엄씨 땜에 울고불고하는 기도원은 요새 파리를 날리고 있다. 결혼들을 안 하니 며느리가 안 생겨. 이 세상에서 가장 너그럽고 따뜻한 시엄씨가 되고픈데, 뜻대로 안 돼.
추수 때라 바람이 차고도 세다. 과거에 후기 졸업을 낙엽 졸업이라 했는데,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으니 마음조차 차갑다. 긴팔옷을 꺼내고, 솜털 든 패딩도 꺼냈지. 국화가 피어 마당이 우릉우릉 향기롭고 벌들은 잉잉댄다. 나락 들판은 허수아비가 지키고 있다. 허수아비는 헛것 아비란 뜻. 가짜 아버지까지 추수를 거든다.
황금 들을 보면 마음도 부자. 돈이 있으면 금수강산이요, 없으면 적막강산이라지. 황금 들은 금수강산이라 기분이 좋아라. 한대수 아저씨 노래 ‘고무신’처럼 “좋아 좋아 기분이 좋아. 베이스 들어오고 기타도 좀 울고 장구 때려. 아이고 좋아. 기분이 좋아. 저 언덕 위에 있는 우리 촌색시 만나러 간다. 아이고 좋아 기분이 좋아. 우리 엄마 우리 아버지 만수무강하옵소서” 노래만 우릉우릉. 기타는 놔두고 휴대폰만 만지작. 사랑하는 사람 손은 도대체 언제 만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