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이 재차 1400원선을 크게 웃돌면서 고환율에 대한 부담을 다시 높이고 있다. 지난 5~7월에는 ‘탈달러화 리스크’를 반영하며 낮은 수준을 이어갔던 것과는 달리 수개월 만에 전혀 다른 시장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다시 치솟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미국 금융시장의 회복을 들 수 있다.
지난 4월 전 세계 185개국이 미국에 보편·상호 관세를 맞으며 글로벌 금융시장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미국도 예외일 수는 없었는데, 위험자산인 주가가 하락했을 뿐 아니라 기존에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던 미국 국채와 달러 역시 큰 폭으로 하락하며 미국의 모든 자산에 대한 전방위 매도가 이어지는 ‘셀 아메리카(Sell America)’ 국면이 현실화했다.
그러나 관세 유예와 함께 지난 7월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OBBBA) 같은 대규모 감세안으로 미국의 성장 둔화 우려를 낮췄고 각종 규제 완화 및 연준의 금리 인하, 그리고 다른 국가들과의 관세 협상 등을 거치면서 미국 금융시장은 빠른 회복세를 나타냈다. 미국 주요 주가지수는 다시금 사상 최고치를 넘어서면서 ‘탈달러’에 대한 우려가 사라졌는데 이는 글로벌 달러 자체의 회복을 이끌어내며 원·달러 환율 상승에도 일정 수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엔화 약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 총리 선출 과정에서 시장은 고이즈미 신지로 후보의 당선 가능성을 높게 보았던 것과는 달리 강한 우파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가 우여곡절 끝에 선출됐다. 다카이치는 과거 아베 신조와 유사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인물인데, ‘여자 아베’라는 평가까지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카이치의 등장은 2012년 이후 10여년간 진행된 아베노믹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게 한다. 아베노믹스는 장기 침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무제한의 통화 완화 정책과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강조한다.
무제한 돈 풀기 정책은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크게 확대했으며, 엔화 공급 확대로 인한 엔 약세 기조가 강화되며 2012년 달러당 70엔 후반 수준이었던 엔·달러 환율은 지난해 달러당 162엔까지 치솟으며 10년 이상 이어지는 엔 약세의 서막을 열어젖힌 바 있다.
실제 달러 대비 엔화 가치를 나타내는 엔·달러 환율은 다카이치 자민당 총재 선출 직후 빠르게 달러당 150엔 위로 상승하며 엔 약세에 대한 기대를 반영했다. 일본과 수출 경합 관계에 있는 한국의 통화인 원화는 엔화 움직임에 일정 수준 동조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엔 약세에 대한 기대는 최근 원·달러 환율의 상승에도 일정 수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협상 관련 이슈 역시 원·달러 환율에 상승 압력을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의 80%에 해당하는 3500억달러를 일시불 현금으로 보내라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대로 움직이면 국내 외환 시장에는 거대한 충격이 올 수 있다. 지금의 환율 변화는 이런 충격을 반영한다기보다 3500억달러 대미 투자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장기화함으로써 지난 7월 말 합의했던 ‘25%에서 15%로 관세율 인하’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유럽·일본 등이 관세율을 15%로 낮춘 반면 한국의 관세율만 25%를 유지한다면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수출 실적은 악화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는 무역 흑자 축소 및 경제 성장 둔화 가능성을 높인다. 마찬가지로 달러 대비 원화 약세, 즉 환율을 끌어올리는 요인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