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내가 가장 열심히 한 것은 14명의 책을 준비한 일이다. 나는 금방 알았다. 내 책을 준비하는 것보다 즐거운 것이 남의 책을 준비하는 일이라는 것을. 내 직업은 글방지기다. 그게 뭐냐고 묻는다면, 글방이라는 곳을 지키는 사람이다. 어떤 마을의 작고 신비로운 우물을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것으로 밥을 사 먹고 월세를 내고 있으니 직업도 맞다. 대부분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직군일 텐데, 그저 그게 내 천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사람들은 내 직업을 작가라고 알고 있겠지만, 아니다. 아무튼 아니다.
나는 평생 정해진 꿈도 진로도 없었다.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헤매다 대학 시절에 진로 적성검사를 했을 때 추천 직업으로 감옥 간수가 나왔다. 절반은 움직이며, 절반은 움직이지 않는 일이 적성에 맞을 거라는 게 이유였다.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기함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간수가 적성에 맞다면 글방지기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는 생각이다. 말이 수호신이지 글방지기란 사람들을 글 감옥에 가두는 것이다. 말하자면 즐거운 감옥. 삶이란 게 각자가 사랑하는 감옥을 어렵사리 찾아내 스스로 감금하는 일이 아니면 무엇인가?
글방지기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을 쓰게 한다. 보통 때라면 절대 생각하지 않았을 단어에 대해, 쓰기 위해서가 아니면 떠올리지 않았을 기억에 오래 서 있게 한다. 그들이 쓰게 될 글을 누구보다도 기다리고, 그것을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 그 외에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몇살인지, 어디 사는지, 어디 학교를 나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무슬림을 믿는지, 어머니는 계신지, 모태 솔로인지 등도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그들이 삶에서 건져 올린 작은 부스러기들에 대해 조금 알 뿐이다. 도저히 잊히지 않는 기억, 깊이 분노한 순간, 가슴을 쿡 찌르고 간 한마디, 좋아하는 노래 가사, 형언할 수 없는 표정 같은 것들. 그런 반짝이는 부스러기들을 영영 바래지 않게 간직하고 있는 것이, 바로 나의 직업이다.
놀라운 점은 글방을 찾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마감에 늦으면 성대모사를 시키는 이 이상한 글방에는 글이 마르는 날이 없다. 사람들은 열심히 썼다. 무심코 글방에 들어왔다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몇년을 쓰기도 했다. 코로나 사태 때는 물론이고 이태원 참사, 12·3 계엄 사태가 벌어진 날에도 글방을 했다. 어느새 뒤를 돌아보니 글들이 책만큼 쌓여 있었다.
첫해에는 50명 가까이 참여한 낭독회를 열었다. 두 번째 해에는 한 해 동안 쓴 가장 재밌는 글을 모아 만든 한 권의 두꺼운 문집이 탄생했다. 세 번째 해에는 30명이 내가 사는 지역으로 놀러 와 요가 하고 다도 하고 운동회 하고 글을 쓰는 1박2일 프로그램 ‘마인드풀니스 워크숍’을 열었다.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었다.
몇년간 수많은 사람과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은, 사람 하나하나가 거대한 책과 같다는 점이다. 모두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 읽어줬으면 하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나 또한 오랜 글방 동료에게 떠밀려 작가가 됐다. 동료가 어느 날부턴가 책을 한번 내보라고 권하더니 느닷없이 북페어 참가를 신청해 책을 팔 자리를 만들어줬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 모든 사건이 내 삶에 어떤 일들을 가져다줄지 알지 못했다. 나는 떠밀렸던 데로, 똑같이 힘껏 떠밀었다. 연중 가장 큰 북페어에 신청하고 사람들에게 천명했다. 이때까지 낼 책을 만듭시다.
그 말이 마치 주문처럼 이뤄지는 것을 한 해 동안 지켜보고 있다.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쓴 사람들, 누가 시킨 적도 없고 당장 나아지는 것 없어도 등불을 밝히듯 써온 사람들의 책이 11월 ‘언리미티드 에디션-서울아트북페어 2025’에서 공개된다. 생김새부터 내용까지 가지각색인 14권의 책이 함께 첫발을 딛는다. 나는 기대된다. 우리에게 또 어떤 이야기가 몰려올까.
양다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