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9일 경북 국립경주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무궁화 대훈장을 수여하고 천마총 금관 모형을 선물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미국 전문가들은 최악의 경우 ‘노딜’까지 우려됐던 한·미 정상회담에서 관세 협상이 타결되고, 안보 분야에서도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등 진전이 이뤄진 것에 대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라고 평했다. 다만 양해각서(MOU)가 공식 체결되기 전까지 변수가 남아있고, 이행 과정에서도 계속 어려움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정상회의 바로 다음 날부터 양국 정부는 반도체 관세와 농산물 수입 등에 대해 이견을 드러냈다.
앤드루 여 브루킹스 연구소 한국석좌.
앤드루 여 브루킹스 연구소 한국석좌는 29일(현지시간) 경향신문과의 e메일 인터뷰에서 “연간 200억달러 투자 한도 설정, 투자처 심사 안전장치 마련 등 내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였다”면서 “이는 한국 정부에 엄청난 안도감을 주고,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외교적 승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드니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도 “한국 내에서는 냉소적 시각이나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미국의 초기 요구안이 한국 외환시장 등에) 초래할 위험이 완화된 점을 고려하면, 이번 합의는 공정하고 상호 이익이 되는 구조로 보인다”고 말했다. 엘렌 김 한미경제연구소(KEI) 학술프로그램 국장은 “투자협정이 타결되지 않아 잠시 멈춰 섰던 두 나라 관계가 이제 제 궤도로 돌아오게 됐다”고 말했다.
정상회의 전날까지만 해도 전망이 어두웠던 관세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동력에 대해 김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바로 다음 날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타결 불발이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방지하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일러 선임고문은 “협상 과정에서 이 대통령과 협상단이 미국의 모든 요구에 일일이 굴복하지 않는 강경한 협상가임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시드니 사일러 CSIS 선임고문.
다만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무시된 것은 한계라고 지적했다. 여 석좌는 “한국은 이번 협상 결과를 놓고 한동안 자축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이는 관세를 휘둘러 동맹의 팔을 비트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식 무역의 ‘정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춘 것은 상당한 성과이지만, 과거 한·미 FTA를 통해 확보했던 ‘최혜국 관세율 대비 2.5% 인하 혜택’ 원칙이 완전히 잊혀졌다는 것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는 만큼 안심하긴 이르다는 지적도 나왔다. 톰 래미지 KEI 경제정책 분석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중 이뤄진 이번 합의도 지난 7월 말 합의 틀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공식 행정명령이 나오기 전까지는 일종의 ‘구두합의’에 불과하다”면서, 향후 MOU에서 농산물 시장 개방 여부, 투자 기간 등 디테일을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일러 선임고문도 “협상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계속 어려운 과제에 부닥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한·미는 정상회의 바로 다음 날부터 합의 내용에 관해 이견을 드러냈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엑스에 올린 글에서 “한국은 시장을 100% 개방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쌀·소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시장에서 추가 개방을 막아냈다는 한국 정부 설명과 차이가 있다. 또 러트닉 장관은 “반도체 관세는 이번 합의의 일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 정부는 핵심 경쟁국인 대만에 비해 불리하지 않은 수준의 관세를 적용받기로 미국과 합의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엘렌 김 KEI 학술 프로그램 국장.
전문가들은 안보 분야에서도 눈에 띄는 진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김 국장은 미국이 한국에 핵추진 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것에 대해 “북한이 러시아의 도움으로 핵추진 잠수함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확보는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라면서 “한국 해군은 광범위한 해역에서 은밀하게 작전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또 사일러 선임고문은 이 대통령이 핵추진 잠수함을 요청하면서 중국·북한 잠수함 추적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과 관련, “한국이 중국 위협에 대한 인식을 미국과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준 것은 ‘동맹 현대화’ 논의에서 중요한 전략적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국내 일각에서는 한·중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적절치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대중 견제에 한국과의 협력을 확대하고, 대북 억지에 한국이 더 많은 국방비를 써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 기간 내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반복적으로 피력하면서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라 칭하고 대북 제재 완화까지 거론한 것에 대해 사일러 선임고문은 “북한을 ‘일종의 핵보유국’으로 언급함과 동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최종 목표로 유지하는 것은 모순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진정으로 김 위원장을 만나고자 한다”며 “비핵화 과정이 완성되기 전이라도 긴장 완화와 평화 증진이 필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