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창 ⓒ이훤
얼마 전엔 다른 나라 무대에서 낭독회를 가졌다.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칭다오 국제학교 학생들에게 나의 한국어 시를 낭독하고, 그 시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였다. 한글로 읽은 문장은 자막을 통해 중국어로 화면에 보였다. 그들에게 물었다. “피곤하지 않나요? 계속 언어 사이에서 뛰어다니는 거.”
나는 오랫동안 이민자로 살았고, 칭다오에는 이주 경험이 많은 시민이 다수다. 발 딛는 터전뿐 아니라 오가는 언어도 땅이다. 타국어든 방언이든 여러 땅을 오가야 하는 삶은 수고롭다는 이야기를 두 언어를 오가며 전했다. 오랜만에 영어로 이야기하는 나는 조금 긴장했고, 한국어와 영어에 서툰 청소년 관객들은 서로 속닥댔다. 객석에는 반짝이는 눈으로 무대를 보는 독자도 있었지만 그들을 충분히 설득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이민자는 여러 개의 이름을 발명하며 삽니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 강연자는 관객을 놓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다. 전해지고 있다고 믿어야 계속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친구가 되려면 긴 통로를 걸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입니다. 어려워야만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나와 주변인들의 역사로 지은 커다란 도서관이니까요.”
영어로 말할 땐 진짜 표정을 가리는 게 더 쉽다. 이민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나 아닌 걸 나인 듯 체화해왔기 때문이다. 낯선 곳에 스미고 싶은 자들은 흉내에 능숙해진다.
그런데 한글로 쓴 시를 낭독하기 시작하자 그럴 수 없었다. 먼 나라에서 앓으며 쓴 문장들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모국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나밖에 없었다. 시를 읽다 혼자 14시간만큼 떨어진 타지로 비행해버린 것. 당시 더듬거리던 나와 10년을 살고도 여러 사정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이주민을 전부 다시 만난 거다.
한국어로 말하는 동안 목소리가 계속 떨렸다. 소중하고 내밀한 걸 내놓는 동안엔 취약함을 숨길 수가 없게 된다.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아닌 척하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끝까지 남아 질문해준 몇몇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에게서 오래전 나를 보았다. 이주를 준비 중이라는 학생. 영어로 시를 쓰고 있지만 모국어만큼 자유롭지 않아 고민하는 독자. 집의 의미를 되묻고 있는 동료 작가. 그날 참석한 몇사람과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교환하고 있다고 느꼈다. 언어는 사건뿐 아니라 나를 통과한 수백명의 타인을 통째로 데려온다.
강연장에 데려간 그 시절의 나는, 독자들이 낭독회에 데려온 그 많은 타인을 보아버리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