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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내면에 남아 있는 선의 불씨

입력 2025.10.30 19:50

“사람이 양심이 있어야지…” 뻔뻔하게 자기 이익만 챙기거나 누구나 아는 사실을 천연덕스럽게 부인하는 사람을 볼 때 터져나오는 탄식이다. 이 말에는 양심이야말로 사람다움을 가늠하는 척도라는 가치판단이 들어 있다. 문제는 자기 잇속에 매몰되어 사는 사람은 이런 탄식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양심을 가리키는 헬라어 ‘쉰에이데시스’와 라틴어 ‘콘스키엔티아’는 공히 ‘함께 안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누구와 함께 안다는 것일까? 일단 나와 마주 서 있는 타자가 떠오른다. 중국 후한 시대의 관리였던 양진은 옛 동료인 왕밀이 “밤이 깊어 아무도 모릅니다”라고 말하며 뇌물을 바치려 하자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가 알고, 내가 아는데 어찌 아무도 모른단 말인가”라며 그를 엄히 꾸짖었다. 양진은 양심이 보편적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하지만 ‘함께’가 근원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양심은 자기 안에 내재된 도덕 법칙이다. 성찰이 자기와의 대화인 것처럼 양심은 도덕적 자아를 포기하려는 순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마틴 루서 킹 목사는 1967년에 한 ‘양심과 베트남전쟁’이라는 설교에서 간디의 비폭력적 저항을 소개한 후 기독교인들의 자성을 촉구하며 이렇게 말한다. “비겁은 안전한지를 묻는다. 편의주의는 정치적인지를 묻는다. 허영은 인기 있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양심은 옳은지를 묻는다. 안전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이 옳다고 말하기 때문에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 연설의 핵심어는 ‘양심’이다. 사람들은 애써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욕망의 문법이 사람들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 시대에 양심을 따라 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외톨이가 되기를 각오하지 않고는 바른 소리, 쓴소리를 하기 어렵다. 유동하는 공포가 스멀스멀 횡행하는 시대, 변덕스러운 기후처럼 도무지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안전의 욕구에 매달리는 것은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익을 위해, 안전을 위해, 인기를 얻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할 때 우리 마음에는 그림자가 드리운다. 이런 일이 반복되며 내면의 그림자가 짙어질 때, 양심의 소리는 점점 잦아들고 예리하게 느껴졌던 통증도 수그러든다.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자기 상실은 이렇게 완성된다. 양심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바르게 응답한다는 것은 언제나 두렵고 어려운 일이다.

10월31일은 개신교회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기념하는 날이다. 루터는 성경을 깊이 읽은 후 가톨릭의 면벌부 판매가 부당하다는 사실을 적시한 95개조의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교회 문에 게시함으로 유럽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밝혀든 작은 양심의 촛불은 횃불이 되어 거대하게 타올랐다. 1521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루터에게 보름스제국 의회에 출석하라고 명령했다. 루터는 강연이나 저서를 통해 주장해온 기존 체제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철회하고 참회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 요구를 거절하면 종교재판관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고심 끝에 루터는 결단을 내렸다. 광부의 아들이며 보잘것없는 일개 수도자가 황제와 제후들, 그리고 교회의 고위 사제들 앞에 섰다. 그는 성경의 증거와 명료한 이성에 비추어 자기의 죄가 입증되지 않는 한 어떠한 외적 권위에도 굴복할 수 없다며 이렇게 말했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취소할 수 없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한다는 것은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곧게 직립한 영혼의 외침은 쇠북소리가 되어 잠든 서구의 양심을 깨웠다. 양심은 무력한 것처럼 보이지만 강력하다. 아퀴나스는 양심은 우리 내면에 남아 있는 선의 불씨라 했다. 그 불씨를 꺼뜨리지 말아야 한다. 종교의 본분은 사람들의 무뎌진 양심을 위무하거나,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그 양심을 타격해 깨우는 것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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