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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입력 2025.10.30 19:50

수정 2025.10.30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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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자의 작은 이야기]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해발이 높을수록 아파트 분양가도 높다
천국 속살 같은 햇볕에 조경수는 자라고

바다로 뛰어드는 불굴의 투지를
투자로 바꾼 자는 영웅이 되어
바다를 바닥처럼 내려다본다

바다는 천국과 멀다
불굴의 투지가 투자가 되지 못하면
바다에 들러붙어 살아야 한다
치통이 있는 어금니 방향으로 볼을 누르고 자는 것처럼

누가 높고 빛나는 곳을 천국이라고 고정시켰을까?

기도드리며 기다림을 견디던 곳에 들어선 아파트에
불이 켜진 밤에는 배들이 사라지고
집어등 불빛으로 밥 먹던 풍경은

우리만 아는 것이 되었다

바다는 바다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길 끝이 바다인 걸 알면서도
매일 어머니께 “어디 가요?” 묻는다
묻고 나면 헉헉거렸다

-시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허유미 시집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10월15일 부동산 대책이 나온 직후, 서울 외곽 도시에 취업한 청년을 따라서 월세방을 보러 갔다.

기억 속에 있는 공장들과 키 낮은 주택가 대신 아파트들이 점령한 도시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수도권이 풍선을 분 것처럼 부풀어져 있음을 눈앞에서 실감했다. 방 한 칸에 60만~70만원에서 100만원에 이르는 높은 월세라니.

결국 청년은 아파트 단지에서 꽤 떨어진 다세대 집들을 알아보게 되었다. 한때 공단으로 출근하던 노동자들이 살았을 법한 닭장집 비슷한 원룸이 월 50만~60만원이었다. 그나마 그 집들도 재개발이 예정돼 투자신탁에 등기되었기에 그 정도란다. 가스비·전기료·관리비 등을 더하면 월급의 절반 가까이나 주거 비용으로 나갈 법한 계산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돈 계산에 서정이 깨졌다. 미래를 향해 도전하는 청년의 희망찬 발걸음이라거나 푸른 꿈이라거나 하는 배부른 감정도 스러지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몇달째 세가 안 나가 끌탕하는 건물주를 만나 지방 소멸 현상을 실감했다. 내가 사는 시골에서 멀지 않은 시내에 다세대주택을 지은 그는 다섯 가구에 임대하고 자신도 살면서 건물을 알뜰히 관리했다. 그는 공동주택 입구에 작은 나무를 심고, 철철이 꽃을 가꾸고 길고양이도 돌본다. 집을 지으면서 서울 집을 팔았는데, 그가 판 집이 네 배 이상 오르는 동안, 공들여 짓고 가꾼 현재 주택은 계속 떨어지는 중이란다. 그는 지나가듯이 말했다. 적어도 어떤 선택이 만회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으며 회복할 수 없게 만드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되지 않냐고. 그의 심회 속에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한 깊은 시름이 느껴졌다.

아파트 투자 혹은 투기는 예외가 없나 보다. 제주에서는 “해발이 높을수록 아파트 분양가도 높”단다. “바다로 뛰어드는 불굴의 투지를/ 투자로 바꾼 자는 영웅이 되어/ 바다를 바닥처럼 내려다본”단다. “기도드리며 기다림을 견디던 곳에 들어선 아파트에/ 불이 켜진 밤에는 배들이 사라”지고 있단다.

어부나 해녀처럼 바다가 삶의 터전인 사람들은 “치통이 있는 어금니 방향으로 볼을 누르고 자는 것처럼” “바다에 들러붙어” 살아야 한단다. 노동으로 살아갈수록 가난해지는 이상한 사회에서 뭍 생명과 함께하는 수평적 서정이 발붙일 자리가 없는 것 아닌가.

바다처럼 땅도 천국에서 멀다. 땅에 엎드린 투지를 무시하고, 투자로 바꾼 자들은 땅을 바닥처럼 내려다보는 것 같다. 바다가 “바다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는 것처럼, 땅도 땅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어 보인다. “불굴의 투지가 투자가 되지 못하면” 땅에 들러붙어 살아야 한다. 그나마 기후재앙 때문에 농사도 녹록지 않다. 우리를 먹여 살리고 친교와 유대를 가능하게 해준 땅과 “바다는 누가 올려다보나”. 수직으로 뻗칠수록 환한 천국이 되는 나라에서 누가 땅과 바다에 감사하며 송가를 부르겠는가.

“누가 높고 빛나는 곳을 천국이라고 고정시켰을까?”

김해자 시인

김해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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