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16일, 녹색연합은 진해 소모도 해군기지에서 미군의 핵추진잠수함 로스앤젤레스호(SSN-688-LA)를 촬영했다. 이 사진을 근거로 녹색연합은 한반도 비핵화 선언 위반을 고발했다. 지금은 역사적 사실로만 기록되는 ‘한반도 비핵화 남북 공동선언’(1992년 체결)은 당시만 해도 엄연한 약속이었다. 더불어 핵확산금지조약과 핵 군축 결의, 국제원자력기구 감시 등 국제적 이행체계를 미군 주도로 거슬렀다는 점은 심각한 일이었다. 당시 녹색연합의 문제 제기에 한미연합사와 국방부는 “잠수함이 정박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비핵화 선언 위반, 국제법 위반’ 등에 대해서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라고만 밝혔다. 이 사안은 그해 국정감사에서 쟁점이 되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9일 이재명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추진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달라”고 요청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동아시아는 대한민국까지 참전한 그야말로 본격적인 군비 경쟁에 돌입하게 되었고,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하고 폭압적인 군사적 긴장 상태에 들어서게 된 것이다. 단언컨대 이는 동아시아 역사에서 또 다른 불행의 서막이다.
먼저 우리의 핵추진잠수함은 북한엔 뚜렷한 핵 위협의 근거가 될 것이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핵무장과 러시아로부터 기술 지원 의혹을 받는 핵추진잠수함 건조도 더는 숨길 것 없이 당당해질 것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군의 전력 강화 논리는 북한의 핵 개발 명분이 된다. 우리 군의 전력은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임에도 말이다. 물론 주변국들의 동북아 해양 패권 경쟁의 가속화도 수순이겠다. 이미 호주에 핵잠수함을 제공하는 ‘오커스 협정’에 대해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회담을 두고 ‘동맹과 평화의 상품화’라며 미국의 이익만 챙겼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더군다나 핵추진잠수함은 고농축 우라늄을 연료로 한다. 전문가들은 우라늄 농축도 20%를 넘으면 무기급(90%)에 도달하는 데 필요한 작업의 90%가 완료된 것이라 평가한다. 아무리 포장해도 핵추진잠수함은 핵 충돌 위험 자체를 부추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1945년 이후 핵무장이 분쟁을 막아준 적은 없다. 핵무기가 사용되지 않은 것은 어디까지나 인류에겐 행운이었을 뿐이다.
핵추진잠수함이 초래할 환경적 위험도 막대하다. 원자로 작동과 추진 과정에서 나오는 저빈도 소음과 능동 소나(음파 탐지)는 해양생태계에 막대한 스트레스를 준다. 미군의 핵잠수함 소나 훈련으로 고래들이 집단 좌초해 죽은 사례는 세계 곳곳에서 보고된다. 거기에 방사능 오염이라는 치명적 위험도 상존한다. 영국의 핵잠수함 기지인 패슬랜에서는 2023년 이후 최소 12건의 방사능 유출 가능 사고가 있었고, 배관 파열로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바 있다. 그리고 핵발전의 치명적인 상수 중 하나인 사용후핵연료 문제도 그대로다. 안 그래도 아노미 상황인데 군사용 소형 원자로 폐연료까지 숙제로 떠안아야 한다.
이쯤에서 대통령께 하나만 묻자. 도대체 누굴 위한 핵추진잠수함인가.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