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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읽기]농어촌 기본소득, 이벤트로 끝날 것인가

입력 2025.10.30 20:05

고등학생 때 모 유업 회사의 신제품 효능 테스트 차원으로 요구르트를 세 병씩 일주일간 받아먹은 적이 있다. 시간 맞춰 단독 섭취하라는 조건이 붙었지만 지켜지진 않았다. 식구들도 주고 다른 반 친구들과 나눠 먹으며 요구르트 파티를 벌였다. 그래도 공짜로 얻어먹고 실험 지침을 어긴 것이 마음에 걸려 대부분 ‘변비 개선에 탁월함’이라고 적었다. 회사 측은 이 제품이 여고생들 변비 탈출에 매우 뛰어나다는 홍보자료에 이를 써먹었을 것이다.

농어촌 인구감소와 소멸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선정 과정을 보며 이 추억이 떠올랐다. 농식품부가 69개 인구감소지역을 대상으로 한 공모에서 총 49개 지역이 신청했고, 서류심사를 통과한 12개 중 7개 군지역(연천·정선·청양·순창·신안·영양·남해)이 선정됐다. 시범 지역에 2027년까지 매달 15만원의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해 평가한 뒤 향후 전면 확대할 계획이다.

국비는 40%, 나머지는 도비와 군비로 채우는 조건이지만 지역 형편이나 의지에 따라 조달 방식이나 비율은 제각각이다. 강원 정선군은 강원랜드 주식배당금을 활용하고, 전남 신안군과 경북 영양군은 태양광, 풍력발전 등을 활용한 햇빛·바람연금을 재원으로 삼겠다고 해 좋은 점수를 받았다.

농어촌 기본소득 사업은 이미 경기 연천군 청산면에서 실험했고, 이번 사업은 확장판 성격이다. 지역 소생의 긴급성을 따져볼 때 일단은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이 사업에 녹아 있다. 그러니 이 시범사업이 잘 이루어져 2년 뒤 다른 지역까지 확장되기를 기대하며 응원받길 바랐지만, 더 급한 우리 동네 말고 다른 동네만 ‘공돈’을 타간다는 소식에 원망부터 나온다.

본래 실험이라면 제비뽑기로 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봐야 한다. 그런데 실험이 아니라 오디션이 되면서 지자체 각축장이 됐다. 노래 재주가 있든 없든 일단 오디션에 참가해 병풍 역할이나 했던 곳들은 당연히 불쾌하다. 게다가 실행 가능성과 의지도 없건만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서류로 장밋빛 미래를 짜내라고 공무원들을 닦달해 몇몇은 영혼이 갈려 나갔을 것이다.

결국 1차 심사에 통과하고 최종심에서 떨어진 지역 정치인들이 서울로 쫓아 올라와 억울하다 외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합종연횡과 퍼포먼스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국비는 고작 40% 대주면서 근근이 먹고사는 지역에 갹출을 강제하는 것은 공통의 불만이다. 여기에 농어촌의 뜨거운 감자인 재생에너지 가용과 재원을 연동해버리면 태양광 시설을 무리하게 세우겠다 나설까 싶어 우려도 깊다. 이런저런 후폭풍이 거세자 농식품부 장관이 추가 선정에 대한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패자부활전에 대한 기대가 높아져 지역 정가는 더욱 들썩대고 있다.

무엇보다 향후 이 사업의 재원 마련과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도 큰 걱정이다. 정권 초기, 힘 받아 실시하더라도 훗날 힘이 빠져 이 사업이 흐지부지된다면 뒷감당은 누가 할까. 당신 동네가 못하는 바람에 우리는 받아보지도 못하고 끝났다며 책임지라고 지역 간 삿대질이 나올까 싶어 조마조마하다. 그간 각종 농촌마을 지원사업으로 분열이 있는 곳에 갈등만 남아 서로 쳐다보지도 않고 사는 마을이 있음을 정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없는 농촌 살림에 15만원이 보태져 밥상에 생선 한 토막 올리려 해도 정작 읍내까지 초고령 노인들이 어떻게 고등어를 사러 갈 것인지도 중요하다. 출향한 자녀들에게 주면 그들은 읍에서 소비해 전체의 경제효과는 살아난 듯 보여도, 정작 바스러진 마을에 어떤 윤기가 돌지 날카롭게 봐야 한다. 어쩌다 얻어먹은 요구르트에 모진 평가를 할 수 없어 ‘효과 좋음’이라 대충 적어낸 그날의 실험은 실패했고, 일주일간 재밌는 이벤트로 끝났을 뿐이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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