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스럽다는 말
이수지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28쪽 | 2만2000원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사람들이 빈번하게 드는 이유가 동성애는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2006년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자연사 박물관 전시 ‘자연에 반하여?’는 동성 간 성적 행동을 보이는 50여종의 동물 사례를 통해 통념을 흔들었다. 반가움의 표시로 서로의 성기를 비비며 뒹구는 암컷 보노보들, 버려진 알을 함께 품어 부화된 새끼를 키우는 수컷 펭귄 부부 등등. 하지만 동성 행동이 동물계에 만연하다는 데서 동성애가 자연스러운 행동이고 따라서 정당하다는 주장 역시 자연을 판단 근거로 삼는다는 점에서 반대 측과 거울상을 이룰 뿐이다.
<자연스럽다는 말>은 자연을 인간 행동의 근거이자 정답으로 삼는 논리의 함정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진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이것도 인간 본성 아닌가요?”라는 물음에 답하기보다 “왜 우리는 그런 질문을 던지는가?”를 묻는다. 인간이 언제부터 자연을 도덕의 근거이자 행동의 잣대로 삼아왔는지, 자연의 이름으로 인간이 만든 차별과 억압을 정당화하는 구조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본다.
책에선 모성, 여성성, 남성성 등 인간중심적 사고로 바라본 자연에 대한 통념을 흔든다. 여성의 역할이 유전자의 명령이 아니라 경제와 제도의 변화 속에서 재구성되어왔음을 보여주고, 폭력과 지배를 ‘남성 본능’으로 포장하는 담론을 비판하며 남성성의 스펙트럼을 제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공격성을 본성 탓으로 돌리는 순간 그 폭력을 가능하게 한 사회적 구조를 보지 못한다고, 진화학이 인간 행동의 기원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정당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과학적 사실의 전달을 넘어 사유의 확장으로 이끄는 책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자연스럽다고 여길 때, 어떤 행동을 자연스럽다는 이유로 정당화하거나 부정할 때, 우리는 어떤 자연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