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은주 첫 시집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
2019년 ‘황해문화’로 등단한 우은주 시인의 첫 시집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거야>(걷는사람)가 나왔다. “좋아하는 마음을 멈춘 적 없어서/ 한 사람이면서 여럿, 하나면서 여러 이름이/ 있었던 사람, 언젠가 없을 사람들을 부른다”는 ‘시인의 말’처럼 이 시집은 온통 ‘좋아하니까 말해 주는 것들’로 꽉 차 있다. 하지만 ‘좋아한다’와 ‘말해 주는 것’ 사이에는 슬픔이 묻어 있고, 그 대상은 거의 이곳에 없다.
“저녁이 되면/ 아이를 먼저 보낸 사람들은/ 서로의 돌을 빌려 와/ 식탁 위에 올려놓는다// 마모된 모서리에서 노란 물소리가 들린다// 물이 잠든 밤마다 사람들은/ 새벽 별빛을 길어 와/ 서로의 아이를/ 씻겨 준다”(‘4월’ 전문)
시집 첫머리를 장식한 시 ‘4월’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과 가족을 소환한다. 가족이 모이는 저녁에 함께 밥을 먹고, 씻기는 것을 ‘돌 이미지’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각자의 돌이 아니 서로 돌을 빌려 와 식탁 위에 올려놓는 행위는 끼니때 내 아이뿐 아니라 이웃집의 아이까지 챙기는 베풂이자 위안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한다’는 것은 ‘기억하고 위로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지나왔다고 믿는 시간을 다시 불러와 그 곁에 조용히 앉아 잊지 않기 위해 듣는 일을 이어 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우은주의 시는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그 주변을 맴돈다. 그곳에서 침묵 속의 미세한 진동을 포착하며, 쉽게 위로하거나 결론짓지 않고 오래 듣는다. 이때 시는 누군가의 슬픔을 대신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 슬픔 곁에 머무는 시간이 된다.
시인은 고발하거나 재현하기보다 그날 이후의 시간 속에 남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6·29 민주화 선언이 있던 6월 29일에는 아이러니하게도 제2연평해전과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시인은 삼풍백화점 사고 현장의 희생자 눈을 통해 그날의 비극을 재구성한다. “나는 여기 있고/ 나는 지나갔다”는 문장을 통해 살아남은 자가 감당해야 할 자리, 기억과 망각 사이의 경계를 고요히 지시한다. 또 공원 벤치에서 심장마비로 죽은 A씨(‘죽음의 생애사’)와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정비업체 직원 사망 사고(‘구의역’), 허름한 고시원에서 외롭게 말년을 보내는 노인(‘0.75평’) 등 사회적 약자의 고통과 상처, 슬픔을 위로한다.
우은주의 시는 사건의 중심이 아니라 그 주변을 맴돈다. 그곳에서 침묵 속의 미세한 진동을 포착하며, 쉽게 위로하거나 결론짓지 않고 오래 듣는다. 이때 시는 누군가의 슬픔을 대신 말하는 언어가 아니라 그 슬픔 곁에 머무는 시간이 된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깊이 도달하는 이 조용한 언어는 상처의 내부에서 새로 피어나는 온도의 감각을 전한다.
임지훈 문학평론가는 해설에서 우은주의 시는 “대안이 아닌 머무름”의 시학이라며, ‘머무름’의 태도 그 자체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섣부른 판단 대신 이를 유보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머무름은 역설적이게도 ‘당신’이 짊어진 슬픔의 무게를 헤아려 볼 수 있는 가장 합당한 방법”이라고 했다.
자신의 목소리를 앞세우지 않고 타인의 목소리 속에서 다중의 ‘나’와 ‘너’를 발견하는 시인의 목소리는 애도의 심연을 건너고 있지만,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 고요한 의지를 따뜻하게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