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12일 쿠팡의 배송 자회사 쿠팡CLS의 택배기사가 업무 중 쓰러져 사망했다는 사실이 최근에야 보도됐다. 숨진 50대 택배기사는 종종 7일 연속 근무를 하거나 하루 12시간 넘는 노동을 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류·택배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하는 사고가 늘고 있다. 사망한 10명 가운데 7명이 뇌혈관질환, 심장질환 등으로 인한 과로사다. 2024년 택배업 사망현황에 따르면 택배노동자의 과로사는 코로나19 기간을 거쳐 4배 이상 증가했다. 이 시기에는 쿠팡이 주도하는 새벽배송과 빠른배송이 물류·유통 산업의 초고속 성장을 견인했다. 이후 온라인으로 물건을 주문하는 ‘e커머스 시장’의 성장은 한국 사회의 소비습관 자체를 바꾸어버렸다. 이제 사람들은 마트에 가서 쇼핑하는 대신 가까운 편의점에 있는 물건조차 배달앱을 통해 주문하는 데 익숙하다. 쿠팡은 이제 물류산업의 절대강자가 되었다. 하나의 기업이 모든 사람의 ‘습관’을 바꾸었을 때, 사회는 그 기업을 ‘혁신의 아이콘’으로 추앙한다.
물론 2020년 당시 28세였던 장덕준씨가 쿠팡물류센터 야간노동 끝에 가슴을 움켜쥐며 사망한 사건에 대해 사람들은 분노하기도 했었다. 새벽배송 중 “더 달려달라”는 쿠팡 측의 독촉에 “개처럼 뛰고 있다”는 답문자를 보낸 쿠팡CLS 택배기사 정슬기씨의 사망에도 사람들은 역시 분노했다.
하지만 ‘야간노동을 규제해야 한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최근 택배노동조합이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0시에서 오전 5시 사이의 새벽배송을 규제하는 방안을 제안하자 주요 경제지들이 일제히 이를 비판하고 나섰다. 소비자들의 편익과 권리, 자영업자의 생존권, 야간노동 제한으로 택배노동자들의 수입 감소 등을 둘러싸고 날선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노동자가 죽더라도, 모두의 편리를 위해 누군가는 야간노동을 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의 정당성은 ‘계약’에 있다. 노동자가 야간수당을 위해 선택한 것이 아니었냐고. 우리는 그 배송료를 지불한 것이므로, 늦은 밤 주문하고 이른 아침 물건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 저임금 구조와 불안정 노동의 문제는 사회의 어두운 지하실에 봉인된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버렸다.
어슐러 K 르 귄은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라는 소설에서 절대적으로 모두가 행복한 마을 오멜라스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마을의 지하실에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는 어린아이가 갇혀 있다. 소년을 보고 온 사람들은 소년의 고통을 보고 분노하지만, 아무도 그 아이를 밖으로 꺼내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장 그날 그 순간부터 지금껏 오멜라스 사람들이 누려왔던 모든 행복과 아름다움과 주말”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작가는 이 ‘공공연한 폭력’이 가능한 비밀을 냉정하게 알려준다. “그것이 바로 계약인 것이다. 계약은 엄격하며 절대적이다. 그 아이에게는 친절한 말 한마디조차 건네면 안 된다.”
장덕준과 정슬기의 죽음에 분노하지만, 아무도 그들이 갇혀 있었던 그 지하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지금도 개처럼 뛰고 있고, 때로 가슴을 움켜쥐며 야간의 밥벌이를 ‘선택’한 것은 어찌 되었든 그들의 자유이고, 이건 우리 ‘모두’와 그들 사이의 계약이므로.
전주희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