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용미용중’이라는 나침반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용미용중’이라는 나침반

입력 2025.11.04 20:07

경주 APEC 정상회의에서 나온 몇가지 에피소드는 이재명 정부의 남북관계 구상과 대중 외교 전망을 가늠해볼 수 있는 포인트들을 제공했다.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달라”고 공개 요청했다.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모두발언에서 기습처럼 던진 요청을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했고, 4일 한·미 안보협의회(SCM)에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적극 지원”하겠다고 재확인했다.

핵추진 잠수함 도입은 ‘쾌도난마’식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뉴욕타임스는 핵잠 도입으로 “한국이 미국의 안보체계에 더 통합될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대중국 견제에서 행동대장을 자처하던 윤석열 정부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자연스럽다. 하지만 관행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핵잠 도입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간주하는 트럼프의 대북접근법이 초래할 리스크에 선제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 인정을 북·미 대화의 전제로 삼고 있고, 북한의 핵무장이 불가역적인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트럼프가 이 전제조건을 수용해 북·미 협상에 나서는 것은 동북아 각국의 안보 우려를 높이고 ‘핵무장’ 목소리를 강화하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한국의 핵잠 도입은 이런 안보 우려를 완전히 씻어내긴 어렵지만 상당 정도 낮출 수는 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도 핵잠 도입 계획을 밝힌 터이고, 미국은 동아시아 핵심 동맹국인 일본의 요구를 외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한국도 이 흐름에 선제적으로 올라타는 것이 고차방정식의 해법이 된다. 한국의 핵잠 도입은 트럼프의 북·미 협상 부담을 덜어주는, ‘페이스메이킹(pace making)’ 성격을 띠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핵잠을 언급하면서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측 잠수함에 대한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고 보탰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1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기 직전에 나온 이 발언이 파장을 낳자 대통령실은 “특정 국가를 지칭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 대통령의 중국 언급이 말실수였는지 의도적으로 ‘긁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미국을 이용해 한국이 ‘만만치 않은 상대’임을 일깨운 효과는 있다.

사흘 뒤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은 중국 IT기업 샤오미가 만든 스마트폰을 이 대통령에게 선물했다. 한국 기업이 만든 디스플레이가 장착된 제품이다. 서방의 제재 대상인 화웨이 대신 샤오미 제품을 선물한 것은 ‘미·중 사이에 낀 한국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한국과 협력할 의지가 있다’는 메시지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샤오미 스마트폰을 살펴보다가 대뜸 “통신보안은 잘됩니까”라고 물었다. 통역을 들은 시 주석이 웃으면서 “백도어가 있는지 없는지 한번 보라”고 받자 이 대통령이 파안대소했다. 정상 인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디지털 기기의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백도어(backdoor)를 통해 화웨이가 정보를 빼낸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중국의 아픈 곳을 농담 삼아 쿡 찌르며 ‘11년의 벽’을 허무는 이 대통령의 솜씨, 그것을 기민하게 받아 ‘캐치볼’을 완성한 시 주석의 노련함은 APEC 정상회의의 ‘원픽(one-pick)’ 장면이었다.

경주에서의 이 대통령은 유쾌함과 다정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영리하게 할 말을 다 하는 외교 기량을 발휘했다. 핵추진 잠수함을 둘러싼 논란과 우려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핵잠 보유가 한국의 안보 자율성을 높일지, 동북아 긴장만 초래할지도 현재로선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한국이 갈수록 험난해지는 동북아 안보 질서에서 ‘독립변수’ 혹은 ‘능동적 행위자’로 나서는 상황이 전개되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조 바이든의 ‘노룩(No look) 악수’는 윤석열 개인에 대한 ‘호불호’도 작용했겠지만, 대미·대일 일변도의 ‘알기 쉬운 외교’였던 탓도 있을 것이다. ‘한국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국제사회가 대통령의 입을 쳐다보는 외교가 오랜만에 펼쳐지고 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은 한밤에 북극성을 바라보며 노를 젓는 일만큼 어렵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 화해를 통한 동북아 평화’라는 나침반으로 대미·대중 외교를 전개했다. 이 대통령은 ‘용미용중(用美用中)’의 나침반으로 새 항로를 개척해 나가려는 듯 보인다. APEC 정상회의는 그 가능성을 선보였다.

서의동 논설실장

서의동 논설실장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