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공원 감시장비 설치 계획
운용 목적에 ‘집회시위’도 포함
대통령 집무실 인근의 용산공원 시범 개방됐던 2022년 6월 10일 시민들이 관람하는 모습. 한수빈 기자
윤석열 정부가 2022년 용산공원 일부를 개방하면서, “불순분자”를 가려내기 위해 출입구에 방문 시민의 ‘긴장도’를 측정하는 장비 배치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사업 계획은 당시 대통령경호처의 김성훈 기획실장을 거쳐 김용현 처장이 최종 결재했다.
4일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경호처 내부 문건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경호처는 2022년 일부 개방된 용산공원 출입구에 심박수 기반 긴장도 측정 장비를 설치할 계획을 세웠다. 경호처가 같은 해 6월21일 작성한 ‘AI 과학경호·경비 플랫폼 구축사업(1단계) 추진계획’ 문건에는 “용산공원 내 국민소통과 개방 공간에 적합한 경호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AI 감시장비·로봇 도입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사업의 1단계 계획에는 2022년 9월부터 용산공원에 심박수 측정기(긴장도 측정기), 얼굴인식 AI 폐쇄회로(CC)TV, 로봇개, 경비드론을 운용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이 가운데 로봇개는 김건희 여사에게 명품 시계를 전달한 서모씨 측 업체와 경호처가 같은 해 9월 시범운용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문건이 작성된 2022년 6월은 대통령실 이전 직후, 용산미군기지 남단 반환 부지를 처음 시범 개방한 시점이다. 정부는 같은 해 9월 개방 구역을 대통령실 인근까지 확대하고 상시 개방할 계획이었으나 일정이 미뤄졌다. 이후 2023년 5월, 해당 부지를 정비해 ‘용산어린이정원’으로 정식 개방했다.
대통령경호처가 2022년 6월 작성한 ‘AI 과학경호·경비 플랫폼 구축사업(1단계) 추진계획’ 문건 일부. 권향엽 의원실 제공.
감시장비 운용 목적에 대해 경호처는 “불순분자” “집회시위”를 언급했다. 같은 해 7월 29일 추가 작성된 ‘업무 보고’ 문건에는 생체신호 탐지 장비(긴장도 측정기) 목적에 “불순분자, 테러 의도자 등 출입시도”의 “사전 탐지”가, AI CCTV 목적에는 “불특정 다수 인원 운집 및 집회시위 등 상황 대응” 등이 명시돼 있다.
‘불순분자’는 군사정권 시절 정권에 저항하는 시민을 적대세력으로 규정할 때 쓰이던 표현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대통령실 인근 용산기지 부지 개방과 관련해 “미국 백악관처럼 낮은 펜스를 설치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첨단 감시장비를 투입해 정권 비판 세력과 집회 참가자를 감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긴장도 측정 장비는 실제로 운용되지는 않았다. 경호처는 “해당 장비를 시험했지만 오작동이 많아 정식 운용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대통령 경호처가 2022년 7월 ‘AI 과학경호·경비 플랫폼 구축사업 추진계획’의 현안보고를 위해 작성한 문건의 일부. 권향엽 의원실 제공.
경호처의 ‘첨단 감시’ 구상은 국가 연구·개발(R&D)사업으로도 이어졌다. 경호처는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대통령 경호를 명분으로 군중을 감시하는 AI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총 240억원 규모의 ‘지능형 유무인 복합 경비안전 기술개발사업’에는 군중의 행동 패턴을 분석해 이상 징후를 탐지하고, 이동형 카메라로 생체신호를 인식해 긴장도를 분석하는 기술 개발이 포함돼 있다. 해당 연구가 알려지자 “한국판 빅 브러더 사업”이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오병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대표는 “시민감시 장치를 도입하려 했다는 것도 문제지만 그 사실이 이제야 드러났다는 점 역시 심각하다”며 “공공분야에서 시민 감시 목적의 기술 도입 시 투명성과 책임성을 보장할 제도적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