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한 혈중 알코올농도 증명 안돼” 원심 무죄 인정
지난해 10월4일 광주 서구 서부경찰서에서 ‘뺑소니 사망사고’ 마세라티 운전자 김모씨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음주를 한 뒤 마세라티 승용차를 몰고 난폭운전을 하다 사망사고를 내고 달아난 30대 남성에게 징역 7년6개월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했으나 2심에서 뒤집은 음주운전·범인도피교사 혐의 무죄를 그대로 유지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도주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32)에게 이같이 선고한 원심 판결을 지난달 확정했다.
김씨는 지난해 9월24일 새벽 술을 마신 상태로 마세라티를 운전하다가 광주 서구 화정동 도로에서 앞서가던 오토바이를 추돌하고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오토바이에는 배달 일을 마치고 퇴근하던 20대 운전자와 그의 연인이 함께 타고 있었다. 연인인 여성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사고 당시 해당 도로는 제한속도가 시속 50㎞였다. 피해자들은 정속으로 주행 중이었지만 A씨의 차량은 시속 128㎞로 과속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사고가 나자 지인들에게 연락해 “음주 교통사고를 일으켰는데 도망가야 하니 대전까지 차량으로 태워달라”,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야 하니 대포폰을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등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는 이후 현금을 사용해 택시나 공항 리무진버스 등 대중교통을 타고 인천공항을 거쳐 서울 등을 배회하다 범행 이틀 만인 같은달 26일 오후 9시50분쯤 서울 역삼동의 유흥가에서 체포됐다.
1심은 김씨에게 적용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음주운전과 범인도피교사 혐의는 무죄로 보고 도주치사 등에 대해서만 징역 7년6개월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김씨가 마신 알코올의 양이 엄격히 증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1심 선고 일부를 뒤집었다. 2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에 의해 특정된 김씨의 음주량은 수사기관이 추측한 수치에 불과하다”며 “이를 근거로 위드마크 공식에 따른 혈중알코올농도를 추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검찰이 위드마크 공식을 적용해 추산한 A씨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093%로 면허취소 수준을 넘었다. 김씨의 범인도피교사 혐의에 대해선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 통상적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형사피고인으로서 방어권 남용을 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례상 범인이 스스로 도피하는 행위는 처벌되지 않는다. 도피를 위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도 처벌되지 않는다. 다만 허위 자백을 하게 하는 등 방어권 남용까지 나아갔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범인도피 교사죄가 성립한다.
김씨와 검사 측은 모두 선고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의 이 같은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보고 상고를 기각했다.
김씨가 사망사고를 낸 사실을 알면서도 김씨에게 대포폰을 제공하는 등 도피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오모씨(34)는 2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상고하지 않아 징역형 처벌이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