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사망한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빈소에 김정은 국무위원장 명의의 화환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었던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3일 사망했다. 김 위원장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쳐 북한 외교에서 중책을 맡은 북한 외교의 산증인이다. 김정일 시대에는 대외 활동을 기피한 김 국방위원장을 대신해 대외 수반으로 활동했다. 2000년 사상 첫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을 영접한 바 있으며, 남북 고위급 회담과 국제 행사 등에서 한국 측과 자주 접촉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인사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4일 “애도의 뜻을 표한다”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북측 관계자 여러분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는 조의를 표했다. 남북관계 단절로 통신선마저 끊긴 탓에 전통문이 아닌 조의로 대신한 것이다.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공개 조의문에 그칠 것이 아니라 좀 더 제대로 된 조의를 표시할 필요가 있다.
남북 간에는 그간 ‘조문 외교’가 드물지 않게 이어졌다. 2005년 10월 연형묵 국방위 부위원장 사망 때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애도의 뜻을 전한다”는 전통문을 보냈다. 2006년 8월 림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사망, 2015년 12월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사망 때에도 정부 인사들이 조의를 표했다. 북한은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김기남 노동당 비서·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으로 고위급 조문단을 꾸려 서울을 방문했다. 그해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엔 조전을 보냈고, 2019년 6월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가 타계했을 때는 김여정 부부장이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과 윤석열 정부의 ‘평양 무인기’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는 단절됐다. 북한은 이재명 정부에 대해서도 “마주 앉을 일도, 논의할 문제도 없다”(김여정 부부장 담화)며 굳은 태도를 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소원하더라도 이웃의 ‘궂긴 일’을 외면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북한의 공식 장례 일정과 별개로, 조문 사절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측이 수용을 거부하더라도 제의는 하고 볼 일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입장, 서울 국립중앙극장 북한 예술단 공연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던 김위원장을 기억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남북관계 산증인이었던 고인에게 마지막 예를 갖출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