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2대 국회의원 부동산재산 분석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정지윤 선임기자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 불패’ 속설은 정책 실패의 다른 얼굴이다. 정권을 불문하고 부동산은 교육과 함께 ‘손대지 않는 게 상책’으로 여겨질 만큼, 정부 정책을 시장이 신뢰하지 않는 대표적 영역이다. 정권 바뀔 때마다 표변한 일관성 부재 탓이 크지만, 정책결정권자들의 도덕성에 대한 불신도 작용했다. 자식들 필요에 맞춘 전두환 정권의 졸업정원제나 사회지도층이 대거 연루된 과거 부동산 투기 광풍은 시민들의 열패감과 정책 불신을 불러왔다. 오죽하면 “정부 정책 반대로 가면 성공한다”는 냉소까지 나오겠는가.
부동산 정책 입법의 열쇠를 쥔 국회의원 5명 중 1명은 다주택자라는 결과가 지난 4일 공개됐다. 이들의 주택 5채 중 1채는 서울 강남에 있고, 평균 19억5000만원인 부동산 자산은 국민들(평균 4억2000만원)의 5배에 가까웠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억원 금융위원장·이상경 전 국토교통부 1차관 등 고위공직자들도 다주택 소유나 아파트 갭투자가 드러나 10·15 부동산 대책 진정성을 크게 손상했다. 이쯤 되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란 소리가 나와도 할 말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회의원·고위공직자 부동산의 백지신탁 요구가 다시 불붙고 있다. 경실련 등 시민사회가 촉구하고 나섰고, 진보당은 법안 발의를 예고했다. 부동산 백지신탁은 실거주 1주택을 제외한 부동산을 매각 또는 백지신탁하도록 의무화하는 제도다. 단순히 내로남불 문제가 아니라 정책 입안·결정·실행·감독의 권한을 쥔 이들이 이해관계자로 시장에 발 담그는 상황은 막자는 취지다.
부동산 백지신탁은 이미 정당의 선거 공약으로 등장하고 실제 법안 논의도 이뤄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3년 전 첫 대선 출마 당시 “고위공직자가 집 2채 갖고 집값 내리겠다고 하면 누가 믿나”라며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매번 실행 단계에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혹여 당사자들의 이해 때문에 매번 용두사미 된 것 아닌가. 부동산 안정의 진심을 증명하기 위해서도 백지신탁제 도입은 회피할 게 아니다. 백지신탁제와 함께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 현실화도 시작하는 건 어떤가. 자신과 지인들 세금이 오를까 보유세를 안 올린다는 ‘배임’ 행위 의심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