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란티어 실적 호조에도 고평가 우려…반도체 업종에 ‘하방 압력’
미 연준 12월 금리 인하 ‘기정사실 아냐’ 일축에 투매 심리 작용도
글로벌 유동성·AI 업황 호조, 고환율은 우려…업계 “패닉셀 지양”
‘검은 수요일’ 5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6% 넘게 급락하며 3900선 밑으로 밀렸지만 4004.42로 거래를 마쳤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장중‘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될 정도로 불안했던 5일 국내 증시의 급락세는 일단 ‘너무 많이 올랐다’는 불안심리에서 시작됐다. 인공지능(AI)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 등에 대한 기대감이 단숨에 뒤틀리면서 유독 가파르게 올랐던 코스피의 ‘검은 수요일’을 만들었다. 외국인이 이틀간 5조원 넘게 순매도할 정도였다.
이날 국내 증시 급락의 발단은 AI 거품론과 미 금리 인하 기대 후퇴였다. 특히 방아쇠를 당긴 건 미국 AI의 대표 종목인 팔란티어 실적이었다.
팔란티어는 지난 3일(현지시간) 장 마감 이후 시장의 예상을 상회한 실적을 발표했지만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200%에 달할 정도로 고평가됐다는 우려가 커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한 것으로 유명한 마이클 버리 사이언자산운용 대표가 엔비디아와 팔란티어의 주가 하락에 베팅(풋옵션 매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4일 뉴욕 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지난달 2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연준은 기준금리를 2회 연속 낮췄지만 12월 금리 인하에 대해선 ‘기정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FOMC 전 금융시장은 12월 금리 인하 가능성을 90% 이상으로 내다보며 확신했지만, FOMC 이후 금리 인하 확률이 60%대까지 떨어지면서 시장 불안이 커져 투매심리가 작용했다.
황승택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팔란티어 공매도 우려, AI 고평가 논란이 국내 반도체 업종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한 것이 이날 국내 시장의 주된 하락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국내 증시의 경우 지난달 20% 넘게 오르는 등 외국인의 차익 실현 압력이 컸던 만큼 상승률이 높았던 반도체, 조선, 원전, 전력 등 업종을 중심으로 가파르게 하락했다.
지난 4일 기준 HD현대(96.78%), SK하이닉스(78%), 한화에어로스페이스(46.29%), 삼성전자(31.79%) 등 주요 종목의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지난달 1일 대비 두 자릿수 넘게 늘어나는 등 ‘빚투’도 과열 양상을 보여왔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의 이익이 본격 개선되기 시작했다고 해도 많은 부분 선반영됐다는 점은 부담”이라며 “조선, 방산, 원자력 관련 일부 종목의 PER은 몇백배일 정도로 고평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선 국내 기업의 기초체력이나 실적 등에 문제가 없는 만큼 일시적 조정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날 6% 넘게 하락했던 코스피의 낙폭이 축소된 것도 ‘심리’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박희찬 미래에셋증권 센터장은 “(코스피 급락은) 워낙 주가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차익 실현이 집중된 상황으로 본다”며 “기본적으로 글로벌 유동성 여건이 좋고 반도체와 AI 업황이 당장 크게 꺾이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봤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도 “펀더멘털과 국내 정부의 증시 정상화 정책 기대는 훼손되지 않았던 만큼, 폭락장에 패닉셀(대거 매도)로 대응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수가 많아 안심하기엔 이르다는 반론도 있다. 원·달러 환율이 1440원대까지 오른 데다 다음달 10일 연준의 FOMC까지 불안심리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준 한국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짧은 시간 안에 국내 증시가 급등한 만큼 평소보다 악재에 민감할 수 있고 특히 환율 상승 국면에서 약세 압력이 발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