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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한 욕쟁이 할매

입력 2025.11.06 22:07

수정 2025.11.06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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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의 할매 열전]고상한 욕쟁이 할매

아랫마을 욕쟁이 할매는 남원 양반가 출신이었다. 그런 집안에서 왜 가난한 집으로 시집을 보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가난보다 양반 족보가 더 중요했겠지.

남원떡이라 불린 할매는 시집온 뒤로 죽자고 고생만 했다. 재산이라고는 지픈(깊은) 논 - 지픈 논은 비가 조금만 와도 잠기기 일쑤였다 - 두 마지기에 산기슭의 밭뿐이었다. 자식은 줄줄이 일곱이나 낳았는데 어쩌자고 남편은 빨갱이가 되어 산으로 갔다. 여순사건 뒤 집에서 쫓겨난 할매는 좀 큰 자식들은 친정으로 보내고 막둥이만 들쳐업은 채 산에서 일 년을 보냈다. 다람쥐가 숨겨놓은 밤을 훔쳐먹으며 겨울을 났다던가.

다행히 친정 오빠가 경찰이라 남편은 몸 성히 집으로 돌아왔다. 옆에 있달 뿐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남편은 허구헌날 방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어느 가을, 남원떡이 밭에서 김을 매는데 소나기가 퍼부었다. 퍼뜩 그놈이 치울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한걸음에 달려왔으나 고추는 이미 물에 잠겨 있었다. 남편은 남원떡이 혼자 벼를 다 베고 집에 가도록 문밖에 나와보지도 않았다. 애가 탄 남원떡이 아이고, 벼를 옮게야 쓸 것인디, 중얼거리면 점잖게 한마디 했다.

“니얄 조카 시켜야 쓰겄네.”

결국은 남원떡 혼자 밤이슬을 맞으며 지픈 논 두 마지기 벼를 다 옮겼다. 그래도 남원떡은 남편 욕을 하지 않았다. 하도 점잖아서 욕이 안 나온다나. 꼭 그뿐만은 아니었을 게다. 그 냥반이 참말 점잖고 인물이 좋았니라, 노상 그리워했던 걸 보면 남원떡은 마음 깊이 남편을 사랑했던 것 같다.

남원떡의 모진 욕은 주로 큰며느리를 향했다. 큰며느리는 남원떡과 달리 계산속이 없고 손이 컸다. 며느리가 밥을 하면 늘 남아 몇날 며칠 찬밥을 먹어야 했다. 논 두 마지기로 일곱 자식을 키워낸 남원떡으로서는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만행이었다. 언젠가는 며느리가 감자조림을 반찬으로 내놓았다. 살림살이를 속속들이 꿰고 있는 남원떡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감재가 워디서 났냐?”

“창고에 있던디요?”

“아이고! 썩을 년. 씨감재를 홀랑 해묵는 년이 워딨다냐. 눈알을 뽑아가꼬 깍두기를 담가서 오독오독 씹어묵어불끄나 워쩔끄나. 내년 감재 농사를 워째야 쓰까잉.”

듣기만 해도 소름 끼치는 욕을 들은 당사자는 정작 웬 개가 짖냐는 식으로 감자조림을 맛있게 먹으며 남원떡의 화를 돋웠다.

“옆집이서 얻으먼 되지다. 벨 걱정을 다 해쌌소이.”

“속창아리 읎는 년! 낼름 처묵지만 않으먼 될 것을 멀라고 넘헌티 아쉰 소리를 해야?”

남원떡은 쌀이 없어도 한두 끼 굶을지언정 다른 집에서 쌀을 빌리지 않았다. 아쉬운 말을 하지 않으려고 남원떡은 산다랑이 밭에 목화를 심어 밤새 실을 잣고, 틈틈이 누에를 키웠다. 자기 몸이 녹초가 되어 문드러질지언정 끝끝내 남원떡은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하지 않고 살다 갔다.

언젠가 장에서 아버지와 남원떡을 만난 적이 있다. 빛바랜 한복 차림이었다. 시집올 때 가져온 그 한복이 남원떡의 유일한 외출복이었다. 장에 물건을 팔러 갈 때도 남원떡은 꼭 그 옷을 차려입었다. 남에게는 절대 추레한 삶의 이면을 보이지 않겠다는 각오였을 것이다. 그래봤자 남원떡의 가난한 삶은 빛바랜 한복으로 누구나의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보다 몇살 위였을 남원떡은 공손히 허리 숙여 인사했다. 아버지도 다급히 고개를 숙였다. 남원떡보다 더 깊이. 두 사람이 서로의 무엇을 그토록 존중했는지는 잘 모른다. 남편과 뜻을 같이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남원떡의 욕받이였던 며느리는 훗날 효부상을 받았다. 남원떡이 밖에서는 절대 며느리 욕을 하지 않은 덕분이다. 며느리를 위해서라기보다 자기 안의 흠결을 밖에 내보이지 않으려는 체면치레 때문이었을 게다. 남아서 버릴지언정 모자라는 것은 용서할 수 없던 손 큰 며느리는 요즘 사람들에 둘러싸여 잘살고 있다. 자신의 누추를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제 몸 고단하게 혹사했던 남원떡의 찰진 욕이 며느리의 푸근한 오늘에 작으나마 밑거름이 되었기를.

정지아 소설가

정지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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