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주 우리는 두 가지 풍경을 마주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의 20대 직원이 과로로 목숨을 잃은 사건과 쿠팡 등 e커머스나 택배 물류회사의 ‘심야시간 새벽배송 제한’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이다. 전자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서비스사회화 시대의 유연한 고용과 노동환경 모습이다. 후자는 플랫폼노동이라는 제도 밖 사각지대의 경계가 모호한 노동문제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인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서비스경제에서 플랫폼경제로 산업구조가 변화한 데 따른 노동시장 현실을 보여준다. 자본주의 확장 과정에서 은폐된 노동의 단면일 뿐이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노동은 존재하지만 그 노동을 하는 이들의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문제의 본질을 포착해야 한다. 지난 한 주 ‘런베뮤’의 비즈니스 모델을 파헤친 기사보다는 휘발성 기사들이 적지 않았다. 비표준적 계약과 파편화된 고용 형태보다는 자극적인 소재들을 주로 다루었다. 왜 홀 서비스와 베이커 업무 직원의 96.8%가 단기계약직 청년이었을까. 매년 영업점 확장과 비례해 산재 신청 승인 숫자가 증가한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과거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불법파견 때 우리는 유사한 경험을 한 바 있다. 제조업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는 질문을 뒤로하고 객관적 사실관계를 살펴보며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과 시민들의 태도는 다르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물론 다수의 기사들은 민낯을 보여준다. “새벽배송이 사라지면 일어날 일들” “2000만 소비자 볼모 잡혔다”와 같은 원색적인 제목들이 즐비하다. 불과 몇개월 전만 하더라도 “새벽배송, 노동자를 말려 죽인다” “새벽배송 노동자, 극단적 선택 3배 더 많이 생각”이라는 기사를 접했다. 노동자 죽음을 다루던 언론들이 이제는 소비자 편리성과 생태계를 앞세워 ‘볼모’라는 표현까지 쓴다. 몇개월 사이 세상이 변한 것인가.
‘쿠팡’이나 ‘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 기업이 산재 사망사고 1위를 다툰다. 올해 상반기 기준 산재 사망사고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플랫폼 기업은 절반을 차지하며, 전체 2490명의 68%(1694명)나 된다. 더는 노동자 건강과 삶을 파괴하는 일자리를 방치할 수 없다. 빠른 배송과 저렴한 가격이라는 편리함 뒤에 누군가의 생명이 대가로 지불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물론 반론도 있다. 불가피하게 야간에 일해야 할 직업도 존재한다. 병원, 항공, 보안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곳은 근무일과 시간, 업무량 등을 고려한 운영과 인력 배치가 이루어졌다.
정형화된 일자리는 해야 할 일과 시간이 정해져 있어 일과 삶의 경계가 분명하다. 그러나 플랫폼 노동자와 프리랜서는 소득을 위해 낮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일감을 찾고 생계를 꾸려야 한다. 플랫폼은 24시간 작동하지만, 그 플랫폼 위에서 일하는 이들의 삶은 불안정하다.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 보니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구직과 실업은 물론 출산·육아·돌봄 그리고 질병과 건강 등에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으로부터 배제돼 있다. 개인사업자 형태의 독립계약 노동자 860만명이 처한 상황이다. 이들은 계약의 불투명성과 불공정은 물론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보호받지 못한다.
그렇다고 전혀 해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사회적 보호를 위한 기준선을 만들면 된다. 일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보호받아야 할 보편적 기준이 필요하다. 국제노동기구(ILO)나 유럽연합(EU)이 제시한 플랫폼 노동자 보호조치와 노동자 건강 및 안전 그리고 사회안전망을 적용해야 한다. 22대 국회에 발의된 ‘모든 일하는 사람 기본법’ 제정은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물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위해서는 객관적 자료와 국가 통계도 필요하다. 노동은 있지만 권리는 없는 이들에게 사회적 시민권을 부여할 때다.
김종진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