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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아침의 나라

입력 2025.11.09 22:00

대한민국의 새벽은 분주하다. 지난 두어 주 공론장을 강타한 쿠팡 새벽배송 논쟁은 국가의 관리를 벗어나 질주하는 시장의 복잡한 이면을 드러냈다. 하나의 사업 모델로 출발한 새벽배송은 한국 사회의 노동권, 노동자들의 분화, 건강과 소득, 규제와 자유, 소비의 필요와 윤리, 그리고 멈추지 않는 자본주의에 대한 자각을 일깨웠다. 사실 새벽은 그 이전에도 국가적으로, 산업적으로, 종교적으로 전략적인 시간이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朝鮮)’의 후예들에게 새벽은 과연 어떤 시간이었는가.

산업사회 이전에 새벽은 희망과 재생 같은 추상적 가치와 연결된 우주론적 시간이자, 생명의 휴식과 활동이 전환되는 중요한 경계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매일 일어나는 작은 천지개벽의 시간이었다. 정화수를 떠놓고 천지신명께 소원을 비는 절박한 시간이자, 깨어 있는 신앙을 신에게 증명하는 기도의 시간이었다. 새벽은 신성했다.

개발연대에 새벽은 국가 주도의 강력한 근대화 프로젝트와 결합하면서 ‘근면’의 시간이 되었다. 1972년에 발표된 ‘새마을 노래’의 가사는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로 시작한다. 중독적인 멜로디에 담긴 저 정신은 새벽을 역사적으로는 계몽의 시간이자, 현실적으로는 집단 노동의 시간으로 바꾸었다. 일어나 노동을 시작하라는 국가적 계몽사업은 ‘잘살아보자’는 희망이 덧입혀지면서 개인과 국가 발전을 위한 신성한 집단적 의무 이행의 시간으로 새벽을 각인시켰다.

외환위기 이후 2000년대 초 신자유주의적으로 재편되어가던 한국 사회에 난데없이 ‘아침형 인간’ 개념이 등장하면서 새벽은 이제 ‘우리’ 마을을 가꾸기 위해 국가가 독려하고 주민이 반응하는 집단 노동의 시간이 아니라, 개인이 각자도생을 위해 알아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침형 인간’은 의지와 규율이 의심되는 다른 시간대 인간과 달리 근면·성실, 자기계발, 그리고 성공을 상징했다. 새벽은 더 이상 집단적 동원의 시간이 아니라 개인적 성취의 시간이 되었다.

새벽배송이 환기했을 뿐, 다양한 새벽 노동이 이미 존재하는 오늘날 새벽은 24시간 작동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시간대로서의 정체성을 박탈당했다. 그저 좀 일찍 일을 시작한다는 개념을 넘어 ‘시작’이라는 관념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이제 새벽은 개인적 규율과 성공의 시간이 아니라 마치 산타클로스의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는 요정들처럼 소비자에게 보여질 필요가 없는 노동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새벽 노동은 현상도 복잡하고 해법도 마땅찮다는 의미에서 괴물이다. 새벽이라는 문화적으로, 생리학적으로 특별한 시간의 결계를 뚫고 들어온 이 괴물은 참 빨리도 성장했다. 혹시 그것이 한국인의 내면에 각인된 새벽의 이미지 때문일까? 새벽이 국가 발전, 개인적 성취로 이어지는 미덕이며 자녀와 가족을 위해 저마다의 신에게 빌던 신성한 시간이었기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모든 시간을 균질화하는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의 쓰나미에 밀려버린 걸까? 자본주의는 생산 과정의 표준화와 정교화 과정에서 ‘시계’로 대표되는 근대적 시간을 만들어냈고, 대규모 생산 모델을 고안하면서 노동자들의 시간을 집단 동기화해 통제했다. 그리고 이제는 시간을 아예 삭제해버리고 있다.

공론장도 분열되었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노동 통제의 진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인간의 몸은 의학적 비명을 지르지만, 각자도생의 시대에 건강은 사치재다. 새벽배송 제한을 제안한 민주노총과 이에 반발한 쿠팡 노동조합의 시간과 입장은 다르다. 새벽에 물건을 받아야 하는 이들과 그럴 필요가 없는 이들의 삶도 다르다. 노동자와 지식인의 삶은 말할 것도 없다. 많은 이들이 사람이 할 일이 못 된다고 고백하지만, 자유시장경제 사회에서 각자의 선택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당사자주의에 어긋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 와중에 자본은 변명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지배할 뿐이다.

새마을의 새벽종은 이제 각자 다른 시간대에 울린다. 새벽 나팔을 불던 국가는 사라졌고, 개인만 남았던 빈자리에 플랫폼이 등장했다. 쪼개진 개인들은 플랫폼을 통제할 방법을 모른다. 머잖은 미래엔 이런 논쟁의 당사자조차 사라질 것이다. 로봇은 말이 없을 테니까.

그때 새벽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있을까. 이 모든 질주의 끝에도 여전히 사람은 지금의 모습일 텐데. 아침의 ‘나라’의 주권자들이 ‘아침’의 주권자가 될 수는 없는 풍경 속에서 미래라는 개념마저 흐릿해진다.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최태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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