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일몰을 보았다. 탐조(探鳥)대원들과 갈대숲을 지나서 용산에 올라 순천만을 굽어보았다. 가을도 겨울도 아닌 11월, 그 계절의 틈새는 온통 철새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늘에서 새들의 울음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만(灣)으로 진격했던 바닷물도 집으로 돌아가고, 갯벌이 드러났다. S자형으로 구부러진 물길만 남았다. 그 물길을 타고 하루가 돌아오고 있었다. 이윽고 먼 산에서 흘러내린 어둠이 노을을 지우기 시작했다.
이때 갯벌로 새들이 날아들었다. 우리가 찾던 흑두루미였다. 천연기념물이며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다. 칠면초 군락지 앞에 내려앉았다. 흑두루미는 천적인 여우나 삵의 공격을 피하려 발목까지 물이 올라오는 갯벌에서 잠을 잔다. 끼루룩끼루룩… 한동안 웅성거리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별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이곳은 흑두루미의 안전지대, 인간의 어떤 위협과 방해도 없이 순수의 어둠을 덮고 잠을 잔다.
순천만 일대는 흑두루미에게 평화의 땅이다. 하지만 평화는 천천히 조금씩 찾아왔다. 1996년 순천시가 개발업자들에게 순천만 골재 채취 허가를 내줘 습지가 증발해버릴 위기를 맞았다. 이미 이 땅의 해안가 습지가 산업단지와 택지 조성을 구실로 사라지고 있을 때였다. 철새 도래지로 유명했던 대구 달성습지와 구미 해평습지도 훼손되어 철새들이 더 이상 오지 않았다. 눈 밝은 이들이 뭉쳐서 개발야욕에 맞서 싸웠다. 자연이 순천의 자산이고 미래임을 전파시켰다. 그리고 2년이 넘는 투쟁 끝에 골재 채취 허가를 백지화시켰다. 2003년 순천만은 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받았다.
2008년 새해, 흑두루미 한 마리가 전깃줄에 부딪혀 목이 부러졌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 나오는 “여귀(女鬼)가 뿜어내는 입김과 같은” 안개가 시야를 가렸을지도 모른다. 무리에 섞여 날아오르려다 미처 피하지 못하고 충돌했을 수도 있었다. 몸집(몸길이 1m, 날개 2m)이 커 민첩하지 못하다. 아마도 러시아 아무르 또는 우수리 강가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왜 수만리 하늘길을 날아와 순천만에서 죽어야 하는가. 흑두루미 사체는 생태도시를 꿈꾸는 시민들에게 묻고 있었다. 도대체 순천만은 누구의 것인가.
시민들은 새들의 안전을 줄기차게 요구했다. 순천시가 화답했다. 아예 전봇대를 철거하는 결단을 내렸다. “흑두루미 눈으로 순천만을 디자인하겠다.”(노관규 순천시장) 그러나 새들의 안전을 위해 인간의 구조물을 철거하는 데는 많은 난관이 있었다.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데 1년이 넘게 걸렸다. 마침내 2009년 4월 전봇대 282개를 뽑아서 62㏊에 이르는 안전지대를 확보했다. 전봇대 철거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것은 겨울을 새들에게 돌려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렇게 확보한 농지를 ‘흑두루미 희망농지’라 명명하고, 여기서 수확한 볍씨를 먹이로 뿌려주었다.
2022년에는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 평야에서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다. 이즈미는 지구에 남아 있는 흑두루미 1만5000마리 정도 중에서 90%가 월동하던 곳이었다. 삽시간에 무려 3000마리가 폐사했다. 위험을 직감한 흑두루미는 피난길에 올랐고, 내릴 곳은 순천만뿐이었다. 6000마리가 몰려와 겨울을 났다. 그리고 그중 3000마리가 이듬해 날아와 순천만에서 월동했다. 2000년에는 불과 115마리가 도래했건만 지난해에는 7606마리가 찾아왔다. 순천이 생태도시로 명성을 떨치자 관광객도 폭증했다. 2007년에는 고작 13만명이었지만 2023년에는 1000만명이 찾아왔다. 순천만의 기적이었다.
순천시는 인근 안풍 들녘의 전봇대를 추가로 뽑고 있다. 내년까지 49개를 철거해 50㏊ 규모의 흑두루미 희망농지를 추가로 확보할 계획이다. 흑두루미는 이제 보성, 고흥, 여수 갯벌에도 날아들고 있다. 순천만에서 시작된 생태복원 이야기를 다른 지자체가 받아서 이어간다면 또 다른 생명평화의 기운이 피어날 것이다. 인간과 새 사이에도 신뢰가 있다. 1㎞ 밖에서도 인간을 경계했지만 지금은 20m까지 접근해도 날아가지 않는다. 머잖아 사람들 코앞에서 학춤을 출지도 모른다. 우리가 떠나온 후 흑두루미가 얼마나 더 찾아왔을지 궁금했다. 황선미 순천만보전팀장이 답했다. “어제(11월10일) 5235마리를 목격했다. 많게는 8000마리가 월동할 것 같다.” 순천(順天), 이름처럼 하늘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순한 사람들이 자연을 경전으로 받들고 있다. 그들은 철새 한 마리의 날갯짓이 세상을 끌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김택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