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세요.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시길 바랍니다.”
83세 원로 연극배우 박정자가 지인들에게 보낸 자신의 부고장에 적은 문구다. 그는 지난 5월 강릉의 한 해변에서 연둣빛 원피스에 빨간 구두를 신고 영화 속 장례식 장면 촬영을 겸해 자신의 장례식을 미리 치렀다. 이른바 ‘생전 장례식’이었다. 살아 있을 때 스스로의 삶을 배웅하는 장례식이라니 낯설지만 의미 있는 아름다운 발상이다. 작은 상여를 들고 해변을 걸으며 뒤따르는 지인들은 북과 꽹과리를 치며 축제처럼 그를 보냈다고 한다. “내 삶을 배웅하는 사람들을 내 눈으로 볼 수 있어 행복했다”며, “웃으며 떠날 수 있어서 좋았다”는 그의 말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어떻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은가?”
최근 우리 사회에서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웰다잉은 잘 사는 것을 뜻하는 웰빙에서 착안된 개념으로 죽음 준비교육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잘 사는 것(웰빙)을 넘어 잘 죽는 것(웰다잉)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마지막 순간을 품위 있고 존엄하게 마무리하려는 실천을 의미한다. 나의 뜻을 담은 유언장을 준비하고, 원하지 않는 치료를 피하기 위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며, 인생의 궤적을 기록으로 남기거나, 생전 장례식이나 이별 파티를 계획하는 것이 그 예다. 죽음을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결국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나를 추모하고 남은 시간을 더 충실하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학문적 연구들도 이러한 웰다잉 실천의 긍정적인 효과를 뒷받침한다. 2022년 대한정치학회보에 실린 대구에 거주하는 65세 이상 노인 2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웰다잉 인식이 높고 죽음에 대한 태도가 성숙할수록 삶의 만족과 정서적 안정감이 높게 나타났다고 보고됐다. 특히, 죽음에 대한 태도 중 죽음 불안이 낮고, 죽음을 수용하며, 죽음에 대한 준비도가 높은 노인일수록 긍정적인 심리 상태를 보였다. 또한, 2024년 근관절건강학회지에 실린 연구에서도 웰다잉 인식 수준이 높은 노인일수록 건강 관련 삶의 질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노년기의 긍정적 심리와 관련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웰다잉이 모두에게 쉽고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여전히 꺼내기 어려운 주제로 여겨진다. 삶의 마무리를 논의해야 하는 시점에도 가족 간의 기대나 체면, 종교적 신념, 죽음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꺼리는 문화가 “삶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 것인가”에 대한 대화를 가로막는다. 개인의 성격, 삶의 의미나 영적 믿음, 정신 건강 상태도 준비되지 않은 마무리로 이어진다. 게다가 호스피스나 완화의료 이용이 어렵고, 연명의료 결정 절차가 복잡하거나 의료비 부담이 크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무리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웰다잉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 사회가 한층 성숙해지고 있다는 증거이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배우 박정자가 생전 장례식을 통해 보여준 것처럼, 떠나는 순간에 보는 이들의 얼굴, 듣는 말, 느끼는 분위기 등이 남은 이들과 자신 모두에게 의미가 된다. 슬픔만이 아닌 웃음, 엄숙함과 동시에 축제 같은 온기를 허락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온전하게 마무리할 수 있다.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감사와 존엄으로 마주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살아 있는 동안 더 많이 웃고, 더 많이 나누고, 더 많이 기억하자. 그리고 죽음 이후에도 이어질 생의 온기를 그려보자. 그것이 바로 잘 죽기(웰다잉)이자 잘 살기(웰빙)의 시작이다. 오늘 나에게 조용히 묻는다. “내 삶의 마지막 장면은 어떤 모습이기를 바라는가.”
김기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