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영·코메일 소헤일리 감독 두번째 작품
가리왕산 조명한 ‘종이 울리는 순간’ 개봉
복구 약속 외면 “2030억 들인 경기장 방치”
산림파괴·온난화 가속 ‘동계올림픽’ 멈춰야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의 한 장면. 가리왕산 알파인스키 경기장에 눈이 내린 모습. 시네마달 제공
“경기장에 종이 울리는 순간, 종소리가 평화를 불러오고 사람들을 연결합니다.”
지난 12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은 온 국민이 환호했던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으로부터 시작한다. 경기장에 울린 종소리에서 누군가는 평화를, 또 누군가는 알파인스키 경기장이 있는 가리왕산에서 매년 주민들이 올리는 산신제 소리를 떠올렸다. 이 영화를 만든 김주영 감독은 후자였다. 올림픽 개막을 계기로 남북이 대화물꼬를 튼 사실이 반가우면서도, 스키장을 건설하느라 자연이 파괴된 곳에서 평화를 말하는 것이 맞느냐는 의구심이 일었다.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의 한 장면. 시네마달 제공
가리왕산은 산림 내 식물 유전자와 종, 산림 생태계 보전을 위해 보호와 관리가 필요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2008년부터 지정돼 한동안 개발로부터 보호받았다. 그러나 올림픽 경기장을 지어야 한다는 이유로 2013년 보호조치가 해제됐고, 축구장 300개 면적에 해당하는 알파인스키 경기장이 가리왕산 중봉과 하봉 일대 184만㎡에 지어졌다.
정부와 강원도는 경기장 건설 당시 ‘올림픽이 끝나면 가리왕산을 철저히 복구하겠다’ 장담했다. 하지만 지역 관광사업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강원도가 복구를 거부하며 산림 복원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2030억 원의 건설비를 들인 경기장은 대화기간 단 3일 쓰인 뒤 현재까지 방치된 상태다. 환경단체와 강원도는 지난 9월에 야 일부 복원안에 합의할 수 있었다.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은 이렇게 파괴되고 방치된 가리왕산을 조명한다. 그러면서 올림픽과 같은 국제이벤트가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질문한다. 단순히 가리왕산을 복원하라는 주문이라기보다, 산림파괴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가속하는 방식의 동계 올림픽 개최는 더는 불가능하다는 진단이다. 또한, 관광단지 조성 등 산림에 가해지는 각종 난개발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자 제안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을 만든 이란인 코메일 소헤일리와 김주영 감독 부부가 9일 서울 정동길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5.11.9. 강윤중 기자
영화를 제작한 두 명의 감독 김주영씨와 이란인 코메일 소헤일리씨는 두 아이를 키우는 부부다. 배낭여행 커뮤니티에서 만난 두 사람은 친환경적 삶에 대한 가치관이 맞아 결혼했다고 했다. 지난 9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김 감독은 “신혼살림은 폐가구로 꾸렸고 지금 입은 옷도 구매한 지 최소 10년은 지났다”며 “환경 보호에 소극적이었는데, 적극적으로 환경보호를 하는 코메일을 보고 동화됐다”고 말했다.
부부가 함께 환경 영화를 만드는 것도 이러한 삶의 연장선이다. 이들의 전작 <7개의 관문>(2022)도 토속신앙과 환경에 관한 이야기였다. 두 사람은 환경에 대한 단편영화 2편도 함께 제작했다. 독립다큐 제작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두 사람은 “덕업일치 같다”며 웃었다. <종이 울리는 순간>은 2022년 봄 울주영화제 당시 만난 시민단체 ‘산과자연의친구’ 소속의 최중기 전 인하대 생명해양과학부 교수의 제안으로 만들게 됐다.
영화를 위한 조사와 구성은 함께 했다. 다만 촬영 초반부에는 김주영씨가 임신과 육아로 바빠 대부분의 일을 코메일씨가 맡았다. 서툰 한국어 실력이지만 윤여창 서울대 산림환경학 명예교수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가리왕산을 오르고 군수, 시민 등을 만났다. 하지만 편집은 다른 문제였다. 한국어를 전부 이해할 수 없으니 좋은 이야기를 골라내는 일도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김주영씨도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고 본격적인 제작에 뛰어들었다.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의 한 장면. 벌목되고 있는 가리왕산의 모습. 시네마달 제공
가장 어려웠던 점은 가리왕산이 벌목된 당시를 담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2014년부터 산이 베어졌고 올림픽은 2018년 마무리 됐다. 영화 촬영 시작은 2022년 12월 경이었다. 때문에 제작 제안을 받았을 때의 첫 질문도 ‘당시의 자료가 얼마나 남아있냐’는 말이었다. 숲의 남아있는 부분으로 산의 풍광을 담을 수 있긴 했지만, 영화에 담긴 과거 자료화면은 ‘산과자연의친구’의 아카이빙 자료에서 따왔다.
코메일 감독은 “촬영은 22년도에 시작했지만, 그들(환경단체)이 찍어둔 것은 2011년부터이기 때문에 이 다큐가 시작된 건 2011년”이라며 “감독으로 이름을 올린 건 우리 두 사람이지만 사실 이 영상에 도움을 줬던 모든 이들의 공동제작이다. 같은 목표를 지녔던 덕에 엄청난 예산 없이도 힘을 모아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자료는 충당했지만 적은 예산으로 촬영, 편집 등 제작 과정의 대부분은 두 사람이 해냈다. 최대한의 제작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었다. 김 감독은 “독립성을 보장받은 덕분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전부 담을 수 있어서 기뻤다”면서도 “촬영부터 음향, 편집까지 둘이서 하느라 아쉬운 점이 많다. 그래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종이 울리는 순간>을 만든 이란인 코메일 소헤일리와 김주영 감독 부부가 9일 서울 정동길에서 포즈를 취했다. 2025.11.9. 강윤중 기자
두 사람은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국제 이벤트의 이면에 대해 살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열심히 만들었지만 관객분들이 봐주시지 않으면 어떤 영향력도 만들 수가 없잖아요. 일반 관객분들은 물론, 선수분들 중에서도 저희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다면 지속 가능한 올림픽 캠페인에 동참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두 사람은 환경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코메일 감독은 “올림픽 작업을 하면서 대규모 이벤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며 “남북한이 통일된다는 가정하에 이뤄질 대규모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중”이라고 밝혔다. 김 감독은 “이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될까? 라는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니 만큼, 앞으로는 대안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찍어보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