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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내는 니콜라

입력 2025.11.12 20:22

수정 2025.11.12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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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에서 연이어 총리가 바뀌고 대규모 시위가 있었다. 그 가운데 ‘세금 내는 니콜라(Nicolas paie)’라는 가상의 인물이 유명해졌다. 고물가와 높은 세금에 시달리지만, 긴축 재정으로 인해 복지 혜택이 축소되는 중산층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프랑스 정부 정책이 어쩔 수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프랑스 국가부채는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115%이다. 2010년대 유럽 재정위기를 겪은 국가들 수준이다. 부채 증가의 원인은 연금 지급 대상의 빠른 증가다. 니콜라는 자신의 미래 연금을 위해 세금을 내지만, 그의 미래 복지는 불확실하고 현재 그가 내는 세금은 큰 부담이다. 프랑스의 현 상황은 많은 ‘선진국’도 직면한 것이고, 한국도 조만간 만나게 될 위험 요인이다.

프랑스의 현 상황은 무엇보다 사회구조 변화가 근본 원인이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후 인구는 빠르게 증가했고 당시 노년층 인구는 적었다. 또 1950년부터 경제성장과 호황이 장기간 이어졌다. 그 위에 유럽 국가들은 너그러운 연금제도를 구축했다. 하지만 70여년이 지난 오늘날 그런 연금제도가 더는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금을 내는 사람에 비해 받는 사람 수가 너무 많아졌고, 경제성장은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도 세금과 복지라는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가진 제도가 있었다. 환곡이 그것이다.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회수하는 제도였다. 환곡에 대해서는 반만 알려졌다. 오랫동안 학교 교과서에서도 조선을 망하게 한 핵심 이유로 ‘삼정(三政)의 문란’을 들었다. 삼정은 전정, 군정, 환정이다. 전정은 토지세금 정책, 군정은 군포 징수 정책, 환정은 환곡 운영 정책이다. 전정과 군정은 본래 세금 제도였고, 환곡의 본래 목적은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후 조선왕조 경제는 극도로 어려웠다. 거기에다 17세기에는 세계적으로 평균기온도 낮았다. 이 시기를 ‘소빙하기’라 부르는 학자도 있다. 농업이 기간산업이던 모든 나라 사정이 좋지 않았다. 중국, 일본, 러시아 모두 이 시기에 오랜 정치적 불안정 끝에 왕조나 국가체제가 바뀌었다. 상황 회복의 핵심은 농민들이 안정적으로 농사지어 스스로 가계를 유지하면서 세금을 낼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큰 문제가 농가 부채였다.

불안정한 날씨와 겨우 먹고사는 정도의 농작 규모는 농가를 빚의 수렁에 빠뜨렸다. 풍년에는 그럭저럭 넘어가도 흉년에는 빚을 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모든 전근대 사회의 이자는 오늘날 기준으로는 고리대였다. 봄에 1가마를 빌리면 가을에 2가마를 갚아야 했다. 한번 빚을 지면 거의 갚지 못했다. 그리되면 빌려준 사람의 노비가 되든가, 고향을 떠나야 했다. 어느 쪽이든 국가는 세금 내는 국민을 잃게 된다. 환곡의 이자율은 민간 이자의 10분의 1이었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에 조선왕조 정부는 환곡용 비축곡을 크게 늘렸다. 이것으로 갚을 힘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환곡을 대출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무상으로 곡물을 지급했으며, 환곡을 갚아야 하는 사람들의 징수 시기를 연기해 주었다. 영조, 정조 시대의 안정은 이런 기반 위에 가능했다. 환곡은 체제 안정의 버팀목이었다.

환곡 기능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웠다. 환곡 비축량은 저절로 점차 줄어들었다. 보관 과정에 자연 감소가 있었고, 대출된 환곡 중 미수되는 것도 있었다. 잦은 자연재해와 흉년은 더 많은 환곡 대출 수요를 높였고, 미수 분량을 더욱 늘렸다. 별다른 수익 창출 기반을 갖지 못했던 왕조 정부가 이를 벌충하기는 대단히 어려웠다. 결국 환곡의 기능은 1840년 정도까지 유지되다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 끝에 민란과 왕조의 패망이 있었다. 체제 안정의 버팀목이란 측면에서 환곡이나 연금이나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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