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제일과 두루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제일과 두루

입력 2025.11.12 20:26

수정 2025.11.12 20:27

펼치기/접기
  • 오은 시인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뭐가 제일 좋았어?” 로스앤젤레스 출장에서 돌아오는 길, 여정을 함께해준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의 낯빛이 복잡해 보였다. 좋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다 좋았지.” 역시나 그랬구나 하고 안도하는 찰나, 질문이 날아들었다. “나는 ‘제일’이 어렵더라. 제일 좋은 거, 제일 마음에 드는 거. 왜 꼭 하나만 뽑아야 하는 거야?” 친구는 10년 넘게 대기업에서 일하다 몇년 전에 사직서를 제출했었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아마도 경쟁이 치열했을 것이다. 제일 좋은 것뿐 아니라 제일 좋은 것보다 더 좋은 것을 늘 생각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친구에게 나는 또다시 ‘제일’ 카드를 들이민 것이다.

‘제일’은 “여럿 가운데서 첫째가는 것”을 가리킨다. 비슷한 단어로는 갑, 가장, 으뜸, 일등, 첫째, 최고 등이 있다. 많은 이들이 꿈꾸지만, 제일의 자리는 단 한 사람의 것이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노력에 값을 매기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한 사람만 남는다. 제일이 되기 위한 여정은, 제일을 찾기 위한 시도는 비단 TV 속에만 있지 않다. 그것은 일상 깊숙이 스며들어 대화 속에서 우리를 시종일관 각성하게 한다. 제일 잘하는 것, 제일 좋아하는 음식, 제일 사랑하는 사람…… 취향을 뾰족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제일’을 가리는 것은 결국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줄을 세우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강연 때 ‘서바이벌’이란 시를 소개했었다. 이 시는 다음과 같이 끝난다. “하나만 남았다/ 나만 남았다// 오늘부로 나는 우리라는 말을 쓸 일이 없게 된다.” 나만 남아서 행복한지 묻고 싶었다. 나만 남으면 정말 행복할지 고민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부터가 여전히 제일의 늪에 빠져 있었다. 함께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 여러 개일 때 행복하면서도 나는 언제나 제일을 찾고 있었다. 무수한 경쟁을 거쳐 지금 여기에 당도한 이들에게 더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은,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당위는 숨 쉴 틈을 앗아간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여전히 제일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게 유일한 답인 것처럼, 그 외의 선택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처럼.

어떤 것 하나만 콕 집는 일은 나의 기호를 뚜렷하게 만들어준다. 마음 가는 대상을 오롯이 바라볼 수 있게도 해준다. 글을 쓰는 데는 적어도 ‘제일’이 도움 될 때가 있다. 제일 어울리는 단어를 고르고 제일 나은 방식으로 문장을 고쳐 쓸 수 있으니 말이다. 당장 제일 쓰고 싶은 것을 글로 쓸 수도 있게 한다. 한 편의 글은 무수한 취사선택을 거친 후에야 완성되니 말이다. 그러나 일상 곳곳에서 침투하는 제일은, 제일을 가려야만 하는 상황은 사람을 경직되게 한다. 어떤 게 가장 기억나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굳이 하나가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제일을 내려놓은 사람에게 더 많은 추억거리가 쌓일 수 있다.

제일, 가장, 최고 등은 상대를 주저하게 한다. 좋았던 것들을 이야기하고 아쉬웠던 부분을 헤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별로였던 것이 나중이 되어서야 빛을 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순위 매기기, 등수 정하기에 익숙해진 나머지, 그것이 생활 속 깊이 들어선 줄 미처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거기서 어떤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문학이 내게 가르쳐준 것 중 하나는 경쟁이나 승부에서 벗어나도 된다는 것이었는데, 아직도 나는 틈틈이 제일을 좇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항에 내려서 이동하는 길, 비행기에 오를 때 던졌던 질문을 바꾸어보았다. “두루 좋았지?” ‘제일’과 ‘두루’가 마치 ‘하나’와 ‘둘’인 것처럼, 그리고 인생의 완성이 빛나는 하루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으로 다 빛났던 하루하루에 있는 것처럼. 친구가 웃으며 답한다. “두루는 골고루니까. 두루 앞에서는 누구도 외롭지 않으니까.”

오은 시인

오은 시인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