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숨겨야 할 일이라 여겼던 성폭력 피해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피해자들은 44년이 지나서야 서로를 만나 ‘열매’라는 모임을 꾸렸다. 닫아두었던 입이 열리고,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아픔을 나눈 이들은 이제 과거의 상처를 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인정받고 법의 책임을 묻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12월12일 ‘12·12 군사반란’에 맞춰 성폭력 피해자 14명과 가족 3명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 사건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했다. 소송 제기 1년을 앞둔 지난 7일 피해자들은 처음으로 법정에 섰다. 45년 만이었다. 연대하는 시민들은 법원 앞에 모인 피해자들에게 평화와 회복을 상징하는 열매와 초록 잎사귀를 건네며 응원했다. 흰색 천에 붉은 꽃이 수놓인 스카프를 두른 피해자들은 서로 손을 잡고 법정으로 향했다. 두 번째 변론기일은 내년 1월16일에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