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기간 중,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에 GPU 26만장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인공지능(AI) 산업의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기대감을 드러냈고, 주식시장은 기다렸다는 듯 호재로 반응했다. 경기 침체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반가운 소식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업인도 정치인도 아닌 시민의 입장에서 냉정하게 말해보자. 이런 호재에도 우리의 일자리·주거·육아·노후 불안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뉴스를 읽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국가가 나름대로 잘나가는 시기라면, 그 힘이 있을 때야말로 미래를 준비할 적기이지 않을까?”
올해 ‘불평등 물어가는 범청년행동’이 진행한 ‘광장 밖 청년 100인 인터뷰’에서 청년들이 꼽은 불안 요인 1순위는 ‘인구구조’였다. 노동인구는 빠르게 줄고 부양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일자리도, 집도, 미래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청년들의 위기감은 감정적 과장이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인 현실 진단이다. 이러한 위기감은 국민연금 논쟁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유사한 조사에서도 미래세대의 세금·연금 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았고, 상당수가 세대 간 불공정으로까지 인식했다. 정작 시민사회조차 현실의 불평등과 인구구조 변화가 만들어낸 불안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채, 여전히 ‘소득보장론 vs 재정안정론’이라는 때늦은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
사실 기후변화가 어떤 속도로 파고들지, AI가 경제와 산업을 어떻게 재편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초고령화 문제가 가장 심화될 것이라는 50년 뒤의 미래는 더더욱 알 수 없다. 하지만 불확실성을 이유로 현실 문제를 미루고, 이론 논쟁이나 정파적 계산에만 매달린다면,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은 그 논의를 신뢰할 수 없다. 미래를 논하기 이전에, 지금의 불안에 답하고 시민을 설득할 수 있는 시선부터 회복해야 한다.
연금이든 복지국가든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원칙과 방향을 먼저 세우는 것이다. 국가가 비교적 여력이 있을 때 무엇을 미래에 남길지, 그 청사진을 선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다양한 세대·계층의 연대를 이끌어내는 원칙은 단순하다. 노동인구가 풍부할 때 남는 생산 여력을 미래세대를 위해 축적해야 된다. 부동산 가격이 오를 때 보유세 일부를 공공임대주택 확충에 투입해 다음 세대의 주거 기반을 강화하면 된다.
AI·반도체 산업이 특수를 누릴 때 법인세와 소득세 일부를 미래 투자를 위해 비축해야 한다. 나라가 어려워질 때 그 자원을 꺼내 쓰면 된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인구구조도, 산업도, 부동산 시장도, 지금이 어쩌면 우리가 ‘가장 잘나가는 시기’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바로 지금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할 최적의 순간이다.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