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밭에서 할매가 늙은 호박을 줍고, 또 남은 깻단을 세우더라. 겨울에 불쏘시개로 쓸 모양이다. 환기 좀 시키려고 문을 활짝 열었는데 마른 깻단 냄새에 몸이 쏠렸다. 호박을 하나 얻어다가 죽 쑤어먹으려고 뒷방에 앉혔어. 겁나게 오지고 감사해라.
<마가복음 전남방언> 책을 산중에 사는 스님 동생에게 한 권 보냈는데 읽고 은혜(?) 잘 받았다며 인사말. 깻단 냄새가 좋다 했더니 깨와 깨달음이 같다면서 농을 한다. 주일학교에다 여름성경학교 출신인데 인연이 달랐는지 ‘그쪽’으로 갔다. 그 친구 언젠가 했던 말을 기억해. 스님들이 주로 ‘깨달음’이 어쩌고 하지만 종정 큰스님도 ‘나는 깨달은 사람이다’ 말하지 않는대. 깨달은 사람이 무슨 ‘나’라는 에고가 있겠는가 말이다. 교회 쪽 동네엔 사이비 ‘재림 예수’가 여럿이다. 말만 목사지 신흥종교 교주 노릇을 하는 분들도 솔찬하게 보인다. ‘나에게 오라! 내 말만 들어라’라는 소리를, 아주 눈 하나 깜빡 않고 겁 없이 내뱉는다. 무슨 배짱인가 싶어.
아침에 마당에서 개들과 놀아주는데, 꽤나 춥더라니. 첫눈이 펄펄 날렸다. 진눈깨비여서 개들이랑 혓바닥을 내밀었는데 그야말로 ‘잔설’이라 맛도 보지 못했어. 머잖아 산길에 눈이 고봉밥만큼 쌓이리라. 이 동네가 아이스크림 동산이 되겠지. 나이 들어 철이 드니 깨달아지는 게 쬐끔 있기는 해. 에게게~ 고작이라겠지만 ‘세월이 지독하게 빠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빈 구석과 외로움을 채우려고 남에게 기웃대거나 남에게 중독되지 말아야 한다는 점.
스스로를 돌보면서, 나 자신과 잘 지내야 할 텐데 말이다. 그 뒤에 벗들 만나 소중한 정담들 나누면 좋으련만, ‘잘난 척, 아는 척, 가진 척, 있는 척’ 태반들 그렇다. 당신 행여 마음 다칠라. 깨달음이란 가을 지나 겨울 오듯 그저 욕심도 미련도 다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 싶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 밑바닥부터 복된 흰 눈이 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