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SID 취소위, 판정문에 한국 측 변론권 담기지 않았다는 점 인정
론스타 측이 제기한 불복신청은 모두 기각…‘배상 취소’ 결론 나와
“한국 정부 승소 이유는…” 정홍식 법무부 국제법무국장이 19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배상 취소 결정 선고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heon@kyunghyang.com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취소위원회가 사모펀드 론스타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 신청 사건에서 한국 정부의 손을 들어준 근거는 원 중재판정부가 주요 증거로 채택했던 판정문의 절차적 위법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19일 법무부의 설명 등을 종합하면, ICSID 취소위원회는 지난 18일 ‘론스타 ISDS 중재판정을 취소한다’는 취지의 판정 취소 결정을 선고했다. 론스타 측이 제기한 불복 신청은 모두 기각한 것과 달리 한국 정부 측이 밝힌 절차규칙의 심각한 위반, 명백한 권한 유월(월권), 이유 불기재 등 취소 신청 이유는 모두 인용했다.
법무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원 판정에서 인정됐던 약 4000억원 상당의 정부의 배상 책임은 소급 소멸됐다”며 “취소위원회는 론스타에 취소 절차에 소요된 정부의 소송비용 약 73억원을 선고 30일 내에 정부에 지급하라고 명했다”고 밝혔다.
법무부에 따르면 ICSID 취소위는 이번 사건에서 손해배상액 판정의 주요 증거로 제시된 국제상공회의소(ICC)의 상사중재 판정문에 절차적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ICC 상사중재 판정문은 앞서 ISDS 중재판정부가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2억1601만달러를 배상하라”고 판정할 때 주요 증거로 채택됐다. 이 판정문에는 “중재판정부는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볼 때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외환은행 매각 가격에 대해 명백하게 논의했고, 하나금융은 금융위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을 받는 대가로 가격을 인하하도록 금융위로부터 지시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는 대목이 나온다. 하나금융의 매각 승인 지연에 정부의 자의적인 권한행사가 있었다는 점이 인정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ICC 상사중재 사건에서 당사자가 아닌 정부는 의견을 내거나 유리한 증거를 제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점을 ICSID 취소위에 주요하게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ICC 상사중재 사건은 한국 정부가 당사자로 참여하지 않은 별건이라고도 했다. 이에 따라 한국 정부의 변론권이 담기지 않은 판정문을 손해배상액 판정의 주요 근거로 삼은 건 “국제법상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에 따르면 ICSID 취소위는 “하나금융과 론스타 간 ICC 상사중재 판정문을 주요 증거로 채택한 뒤 이에 의존해 금융위의 위법행위와 국가 책임을 섣불리 인정한 것은 국제법상 근본적인 절차규칙인 적법절차의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론스타 측이 ICSID 취소위에 제기한 ‘한·벨기에 투자협정(BIT) 적용 범위 및 관할에 대한 판단 오류(권한 유월)’ ‘손해 산정 과정에서 변론권 등 절차상 권리 박탈(절차규칙 위반)’ ‘주요 쟁점에 대한 이유 미기재 또는 모순(이유불비)’ 등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무부는 이번 사건에서 주요 증거의 절차적 위법성이 확인된 만큼 손해배상액 판정 중 금융위 부분의 위법행위와 국가 책임 등이 연쇄적으로 취소됐다고 했다. 이번 결정이 론스타의 2차 중재신청 없이 확정된다면,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지급해야 할 배상액은 0원이 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ISDS 취소절차에서 우리 정부의 배상 책임이 취소된 첫 사례”라며 “이번 취소 결정을 통해 ‘국제법상 적법절차의 원칙에 위배된 증거는 국가 책임 인정의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는 원칙’을 명확히 한 의의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