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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은 왜 존재하는가

입력 2025.11.19 21:42

수정 2025.11.1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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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중환의 진화의 창]영웅은 왜 존재하는가

2001년 도쿄의 신오쿠보역에서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씨는 북적이는 승강장에 서 있었다. 술에 취한 일본인이 선로에 굴러떨어졌다. 이씨가 뛰어내렸다. 취객을 끌어올리려는 순간, 전동차가 이들을 덮쳤다. 생면부지의 외국인을 구하고자 목숨을 던진 이씨의 행동은 일본 열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유족에게 조의금과 위로 편지가 쇄도했다. 신오쿠보역에 추도문이 새겨졌다. 일본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이야기가 실렸다. 긴 세월이 흐른 올해에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부산에 있는 의인 이수현의 묘소를 찾아 헌화했다.

세상에는 영웅이 있다. 흔하고 일상적인 도움이 아니라, 드물고 극단적인 희생으로 우리를 감동하게 한다. 크게 다칠 위험이나 막대한 시간과 경비를 감수하면서 남들에게 ‘예외적으로 큰’ 이득을 안기는 영웅에는 이순신 장군 같은 전쟁 영웅, 김연아 선수 같은 스포츠 영웅, 슈퍼맨 같은 가상의 영웅, 코로나19 시기의 간호사 같은 사회적 영웅 등이 있다. 영웅은 왜 존재하는가? 왜 그들은 극도로 이타적인 행동을 하는가?

인간 행동을 진화적 시각에서 연구하는 필자는 이처럼 영웅적인 행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부모가 자녀의 끼니를 챙겨주거나 직장 동료끼리 상부상조하는 등의 일상적인 도움은 오늘날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으로 잘 설명된다. 그러나 낯선 타인의 번식 성공도를 크게 높이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선택될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다행히 최근 나오는 연구들은 영웅적 행동이 진화한 까닭을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한번 살펴보자.

영웅적 행동을 이해하는 열쇠는 영웅에게 환호하고, 갈채를 보내고, 업적을 기리는 다수의 대중이다. 영웅을 찬양할 만반의 준비가 된 대중이 있다고 일단 가정하면, 누군가는 크나큰 비용을 감수하면서 극단적인 이타적 행동에 나서리라 짐작할 수 있다. 대중의 인기와 환호는 당사자의 사회적 지위를 하늘로 치솟게 한다. 인류의 진화 역사를 통해, 지위가 높은 조상은 많은 자원과 영향력을 확보해 자식을 다수 남길 수 있었다.

잠깐, 오해가 없길 바란다. 순국선열이나 코로나19 병동의 간호사들이 고작 대중으로부터 존경받고 싶어서 숭고한 희생을 했다는 말이냐며 벌컥 화를 내시면 곤란하다. 사우나에 가면 땀이 나지만, 그 누구도 “더우니까 땀을 내서 체온을 유지해야지!”라고 의도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의 몸과 마음은 마치 더워도 체온을 유지해 번식에 성공하려 애쓰는 것처럼 ‘설계되어’ 있다. 마찬가지로, 영웅적 행위를 만드는 심리 기제는 마치 자신의 용기와 선의를 대중에게 과시해 지위를 높이려 애쓰는 것처럼 ‘설계되어’ 있다는 뜻이다. 정말로 영웅이 대중의 반응을 항상 신경 쓴다는 말은 아니다.

영웅적 행동과 대중의 찬양이 맞물려 진화했다고 하면, 더 어려운 문제가 남는다. 왜 사람들은 애초에 영웅에게 명성, 지위, 그리고 영예를 흔쾌히 부여하는가? 영웅을 기리는 행사를 하고, SNS에서 ‘좋아요’를 누르고, 일상 대화에서 영웅을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인지과학자 장루이 데살(Jean-Louis Dessalles)의 가설에 따르면, 대중이 영웅을 공개적으로 찬양하는 까닭은 영웅이 보여준 가치에 자신도 뜨겁게 헌신하고 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과시하고 드러내기 위함이다.

인간은 가치를 공유하는 이와 쉽게 어울리고 뭉친다. 그런데 누군가 지닌 가치는 그가 그 가치에 맞는 행동을 할 때 드러난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를 염려하는 이는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탄다. 문제는 그가 대중교통을 탔을 때만 환경을 아끼는 마음이 남들에게 보인다는 것이다. 영웅에 대한 공개적 찬양은 바로 이 점에서 효과적이다. 지인들에게 환경 영웅 제인 구달이 최근에 작고한 소식을 들었냐고 이야기를 꺼낸 다음, 구달을 열렬히 칭찬함으로써 나의 환경 사랑을 알릴 수 있다. 데살은 대중의 찬양은 영웅을 향한 신호가 아니라 자신이 영웅과 공유하는 가치(애국, 친환경, 국위 선양 등)를 남들에게 알려 친구를 늘리기 위한 신호라는 가설을 수식 모델과 시뮬레이션으로 뒷받침했다.

요컨대, 손뼉 칠 준비가 된 대중 앞에서 어떤 이는 지극히 이타적인 행동을 해 대중의 찬탄을 받는다. 선행을 베풀고서 “전 제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라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조차 때로는 언론과 누리꾼의 등쌀에 떠밀려 원치 않는 영웅에 등극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는 까닭도 이제 아셨을 것이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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